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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진심어린 선행이 ‘사람 중심’이라는 지자체의 의지를 통해 공동체 문화로 되살아났다. ‘얼굴 없는 천사’가 만든 천사마을의 작은 기적.
전주는 시내 곳곳에 성지(聖地)를 품고 있는 지역이다. 극심한 박해 속에서 자신들 의 신앙을 지켜내고자 했던 순교자들의 정신 때문일까? 지금의 전주시에도 이들의 마음이 곳곳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듯하다. 전주시의 천사마을 가꾸기 사업은 ‘사 람’을 먼저 생각하는 전주시의 오랜 노력의 결실과도 같다. 사업지인 노송동은 전 주의 구도심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근처에 한옥마을, 시청 등이 위치하고 있지만, 1980년대 외곽지역 택지개발 당시 소외됐던 까닭에 전주시의 대표적 노후지역으 로 꼽힌다. 이러한 노송동이 ‘천사마을’을 통해 명소로 거듭나고 있다. 최근에는 일 본의 한 지자체에서 벤치마킹 답사를 다녀 갔을 정도라고 한다.
으리으리한 건축물이나 유적지는 커녕 낡은 콘크리트 집들과 허름한 가게뿐 인 이곳을 찾기 위해 한옥마을로부터 2km를 걸어오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곳에 정말 천사라도 살고 있는 것일까?
시작은 유난히 눈이 많았던 2000년 겨울이었다. 한 초등학생이 노송동사무소 근처 에 조그만 상자 하나를 두고 갔다. 안에는 무거운 돼지저금통 하나와 지폐가 한가 득 들어 있었다. 상자 뚜껑에는 “소년소녀 가장을 위해 써주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 세요!”라는 짧은 인사가 적혀 있었다. 제3자를 통해 전달된 익명의 기부는 다음해에 도 그 다음해에도 계속되었다. 매년 연말이 되면 노송동사무소에는 어김없이 전화 한 통이 걸려왔고, 예견된 장소엔 어김없이 돈이 가득한 상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두고 간 상자의 위치를 전하는 목소리는 매번 달랐다. 언젠가는 중년의 남자이기도 했고, 젊은 아가씨이기도 했다. 그들은 모두 ‘얼굴 없는 천사’의 메신저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16년이 흘렀고, 총 4억 4,764만원이라는 적지 않은 돈이 기부되었다.
누가, 왜 철저히 자신을 숨겨가며 이런 선행을 하는 것일까? 신문기사로 보 도될 정도로 유명세를 탔지만, 천사는 결코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누구도 천사 의 얼굴은 몰랐지만, 그의 선행은 16년 동안 참으로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 가장 큰 변화는 지역사람들의 마음가짐이었다. 2009년 천사마을 가꾸기 사업을 앞두고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을 때 주민들은 시설증진보다는 살기 좋은 마을이 되는 것을 원한다고 답했다. 좋은 마을이란 결국 사람이 행복한 마을이라 는, 가장 기본적인 가치가 노송동 깊숙이 뿌리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구분 | 기탁일자 | 지원 방법 및 놓고 간 장소 | 지원 금액(원) | 지원 내력 및 결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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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 2000.04.03 | 동사무소 내 민원대 위에 (초등학생3학년 남학생이 심부름) | 584,000 (돼지저금통) | 연탄, 쌀 지원 (12세대) |
2차 | 2001.12.06 | 20대 초반 여성 전달 | 7,428,000원 (돼지저금통) | 쌀 지원 (18세대) |
3차 | 2002.05.04 | 장애인 도움 벨 옆 어린이날 도움 (40대 남자 전화) | 1,000,000원 (현금) | 현금 지원 (9세대) |
4차 | 2002.12.24 | 공중전화부스 (60대 남자 전화) | 1,612,060원 (현금) | 현금 지원 (16세대) |
5차 | 2003.12.23 | 공중전화부스 (30~40대 남자 전화) | 5,367,330원 (만 원권 500만원 + 돼지저금통 367,330원) | 현금 지원 (30세대) |
6차 | 2004.12.22 | 공중전화부스 (50대 남자 전화) | 5,458,420 (만 원권 500만원 + 돼지저금통 458,420원) | 현금 지원 (31세대) |
7차 | 2005.12 26 | 동사무소 지하 주차장 입구 화단 (30대 남자 전화) | 10,455,180원 (만 원권 1,000만원 + 돼지저금통 455,180원) | 난방유 주유권10만 원권 (100세대) 연탄150~200장 지원 (총 1,300장, 8세대) |
8차 | 2006.12.21 | 동사무소 지하 주차장 입구 화단 (30대 후반 남자 전화) | 8,513,110원 (만 원권 800만원 + 돼지저금통 513,110원) | 현금지원 (85세대) (세대 당 10만 원) |
9차 | 2007.12.27 | 동사무소 지하 주차장 입구 화단 (30대 후반 남자 전화) | 20,381,000원 (만 원권 2,000만원 + 돼지저금통 381,000원) | 현금 지원 198세대 (세대 당 10~30만 원) |
10차 | 2008.12.23 | 동사무소 지하 주차장 입구 화단 (40대 남자 전화) | 7,428,000원 (돼지저금통) | 쌀 지원 (18세대) |
11차 | 2009.12.28 | 동사무소 옆에 소재한 우리세탁소 옆 공터 (40대 남자 전화) | 80,265,920 (5만 원권 5,000만원+ 1만원권 3.000만원+ 돼지저금통 265,920원) | 1차 지원 (2010.2.2.): 392세대 (388세대 각 10만원, 4세대 각30만 원) 2차 지원: 2010.9.지급 402세대(세대 당 10만 원) |
12차 | 2010.12.28 | 동사무소 옆에 소재한 송헤어샵 골목길 가장자리 (40~50대 남자 전화) | 35,840,900 (5만 원권 3500만원 + 돼지저금통 840,900원 | 1차 지원 (2011 1.24) 2차 지원: 2011.9.5 358세대(10~20만 원) |
13차 | 2011.12.20 | 동사무소 옆 “얼굴 없는 천사 거리” 도로에 주차된 차량 밑에 놓음 (40대 남자 전화) | 50,242,100 (5만 원권 5000만원 + 돼지저금통 242,100원 | 300세대(각 10만 원) 2차 지원 : 2012.9.18 202세대(각 10만 원) |
14차 | 2012.12.27 | 동사무소 옆 천사의 비 옆 화단 (60대 남자 전화) | 50,304,600 (5만 원권 5000만원 + 돼지저금통 304,600원 | 현금지원 503세대 (세대 당 10만 원) |
15차 | 2013.12.30 | 동사무소 옆 천사의비 옆 화단 (40대 남자 전화) | 49,246,640원 (5만 원권 4900만원 + 돼지저금통 246,640원 | 현금지원 493세대 (세대 당 10~20만 원) |
16차 | 2014.12.29 | 노송동 주민센터 인근 우리세탁소 옆 (40~50대 남자 전화) | 50,304,390 (5만 원권 5000만원 + 돼지저금통 304,390원) | 현금지원486세대 (세대 당 10~20만 원) |
17차 | 2015.12.30 | 노송동 주민센터 옆 기부천사쉼터 공원 내 (40~50대 남자 전화) | 50,339,810 (5만 원권 5000만원 + 돼지저금통 339,810원) |
전주시의 모토는 “가장 인간적인 도시, 전주”이다. 김승수 전주시장은 “서울보다 부자일 수는 없지만 서울보다 행복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 엄마의 밥상, 동네복지 등 사람중심으로 시정을 이어가고 있다. 한 개인의 선행이 사람들 사이의 문화로 녹아들게 한 것은 이러한 전주시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전주시가 천사마을 가꾸기 사업을 기획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심에 둔 것은 ‘사람’이었다. 2009년 노송 동사무소 옆에 설치된 얼굴 없는 천사비는 천사마을 가꾸기 사업의 출발점이 되었 다. 천사비가 설치되면서 의기소침했던 지역도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주민들의 재 능기부를 통한 벽화로 골목은 환해졌고, 지역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주변을 깨끗 하게 관리해 나가기 시작했다. 천사비는 ‘얼굴 없는 천사’의 선행을 기리기 위한 것 이었지만, 곧 노송동의 자부심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형성된 공동체들은 이러한 분 위기를 이끌었다.
전주시는 서울경기지역을 제외하고는 공동체 수가 가장 많은 지역 중에 하나이 다. 2011년 국토부 R&D 도시재생 테스트베드(TB) 사업에 얼굴 없는 천사를 활용한 천사 테마마을이 선정된 것은 좋은 기회가 되어 주었다. 전주시는 공동체가 좀 더 단 단해 질 수 있도록 정부 정책을 공동체 원들에게 적극 소개했고, 천사마을은 이를 통 해 노송동 주민들이 단단하게 뭉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본격 적인 사업 시작 전에 주요 공동체 리더들을 양성하게 된 것이 컸다. 천사마을 쉼터 조 성에 많은 공헌을 한 염색 공동체 오색공감의 리더 김성국 씨는 테스트베드 사업 프 로그램에 참여하여 마을 재생 및 발전을 위한 많은 아이디어를 얻은 경우이다.
“저희 ‘오색공감’은 자발적인 공동체예요. 감나무에서 열매나 잎이 떨어져 거 리가 더러워진 거리를 치우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감나무를 염색에 이 용하기로 했어요. 그러면서 거리도 깨끗해졌고 이웃 사이도 돈독해졌죠.”
‘오색공감’의 공동체원들은 자발적으로 700만원을 모금하여 천사길 조성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주민들의 변화된 의식이 테스트베드 사업을 통해 실현 방향 을 알맞게 찾아나간 것이다. TB사업 연구와 함께 진행된 천사마을 공동체는 ‘오색 공감’ 뿐만이 아니다. 지역 곳곳에 텃밭을 만들고 가꾸는 ‘도시농부반’, 이렇게 수 확된 채소를 바탕으로 비빔밥을 만드는 ‘노송밥나무’, 마을 소식지인 ‘천사동 마을 신문’, 꽃을 가꾸는 ‘노송꽃나무’ 이 다섯 개의 마을 공동체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지역의 발전을 위해 자발적으로 마음과 힘을 쏟고 있다. 이들이 오늘날 노송동 주 민 자생력의 주요한 기반이 됐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2009년 천사비와 천사의 거리가 조성되고 난 뒤 꾸준히 연계해 온 공동체는 활동을 이어왔다. 이들이 중심이 되어 2011년 10월 4일에 열린 ‘천사축제’는 주민들 이 중심이 되어 열린 자생적 이웃사랑 실천행사이다. 얼굴 없는 천사의 선행은 마 을의 자부심이 되었고, 이러한 자부심은 공동체를 연결하는 단단한 고리가 되어 주었다. 또 다른 공동체인 ‘천사길사람들’은 벽화 작업으로 골목길을 환하게 밝혔고, ‘전주비전포럼’은 쉼터 앞에 있는 <우리 세탁소>에 작은 도서관을 설립했다. 지난 2015년에는 천사비 근처 오래된 집 두 채가 있던 공간에 조그만 쉼터가 만들어졌다. 좋은 일이라는 의식 때문인지 조성 과정 또한 순조로웠다. 조성공사에 참여했던 시 공업체는 공사 준공 후 어려운 이웃을 위해 백미 30포대를 기부하기도 했다.
얼굴 없는 천사의 따뜻한 마음은 이제 노송동 전체 주민들의 기쁨이자 삶의 가치가 되었다. 쉼터에서 열리는 나눔 행사와 작은 음악회는 지역의 문화를 풍성하 게 만들어 주고 있으며 얼굴 없는 천사의 선행을 따라 이어진 크고 작은 기부가 천 사날개 기부함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제 아이들은 이곳을 견학하며 이웃을 생각하 는 천사마을의 정신을 배운다. 쉼터는 이곳 노송동의 상징적인 장소가 되었다. 지 역 쉼터 벽면 한쪽에 만든 조형물인 ‘희망을 주는 나무’의 사과 모양 종이에는 주민 들의 소박한 소원들이 적혀 있다.
천사마을 사례에서도 알 수 있지만 전주는 공동체 중심 사회로 거듭나고 있다. 전 주시에는 현재 66개의 지역공동체가 있으며 60개의 사회적기업과 5개의 마을 기 업, 19개의 자활기업이 있다. 협동조합은 215개나 된다. 이러한 공동체정신을 지역 사회 깊숙이 뿌리내리기 위하여 지난 2012년 건립한 것이 전주도시혁신센터이다.
역시 노송동에 위치하고 있는 이곳 센터는 도시재생, 사회적 경제, 공동체 지 원 등을 통합적으로 수행하는 중간지원조직으로서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사회 적 약자들을 위한 사업을 기획하고 공동체 모니터링을 전담하며 주민들이 자생적 으로 지역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 수 있도록 돕고 있는 것이다.
“전주시는 사업 기획 단계에서부터 공동체와 인간을 중심으로 생각했어요. 그러다보니 공동체가 사업에 있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것이지요. 공동체 는 만들어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속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주민들 사이의 믿 음이 깨지지 않도록 돕는 것이 저희 시에서 하는 일이고요. 사람에 대한 믿음이 우 선되어야 도시재생도 가능한 것이거든요.”
구분 | 조직 | 기능 및 임무 |
---|---|---|
행정 | 전주시 도시재생과 | 사업계획 수립 및 추진 |
주민협의체 | 노송동 마을협의회 (지역주민 20인) | 사업추진시 주민의견 수렴 및 협력방안 구축 |
중간지원조직 | 전주도시혁신센터 (사회적경제·도시재생지원센터) | 사업계획 수립 및 사업추진 자문협조 |
관련 전문가 | 디자인 및 설계 전문가 | 도시재생지원센터 및 기부천사 쉼터 공사 관련 자문 및 협조 |
지역공동체 | 노송꽃나무 외 5개 공동체 | 사업추진시 주민의견 수렴 및 연계 사업 추진 |
도시재생지원센터에서는 2년 째 ‘온누리 공동체’ 사업을 통해 지역 공동체를 지원하고 있다. 주민제안공모를 통해 경쟁력 있는 공동체를 선정하여 컨설팅 및 사 업비를 지원하는 형식이다. 임경진 센터장은 “효과적인 공동체 운영을 위해서는 사 업초기에 다양한 주체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한 다. 지역발전은 단순한 행정중심의 사업추진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양 한 주체들이 마음을 열고 협력함으로써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더욱이 공동체 조직 은 단기간 안에 체계를 갖추기가 어렵기 때문에 각각의 공동체가 스스로의 개성을 찾기 위해서는 시간을 가지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 단단한 공동체는 각각의 정체 성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이 과정에서 창출되는 수익은 적더라도 구성 원들에게 더 큰 보람을 주며 지속 참여할 수 있는 동력이 되어 준다. 센터의 역할은 이들이 방향을 잘 잡아 나갈 수 있도록 변함없는 조력자가 되어 주는 것이다.
천사 날개 옆에 비치되어 있는 기부함은 누구나 천사가 될 수 있다는 단순한 사실을 이곳을 지나가는 모두에게 상기시켜 준다. 노송동의 기적은 한 사람의 꾸준한 선행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모인 마음들이 지역을 변화시켰다는 것이다.
이름도 알 수 없는 한 사람의 선행은 지역사업의 아이디어가 되었고, 평범한 마을 을 변화시켰으며, 주민들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중요한 것은 지금의 천사마을은 ‘결코 얼굴 없는 천사’ 한 사람을 통해 만들어지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전주시의 노력과 도시혁신센터의 끊임없는 고민 그리고 공동체를 중심으로 한 지역주민들 의 공감이 없었다면 천사마을 또한 없었을 것이다.
얼굴 없는 천사의 정신을 기리는 마음에서 만들어진 기부함 옆 공간에는 천 사 날개가 그려져 있다. 그 옆에 비치되어 있는 기부함은 누구나 천사가 될 수 있다 는 단순한 사실을 이곳을 지나가는 모두에게 상기시켜 준다. 노송동의 기적은 한 사람의 꾸준한 선행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모인 마음 들이 지역을 변화시켰다는 것이다. 아마도 천사마을을 찾는 사람들은 이 단순한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이곳 노송동을 찾는 것이 아닐까. 노송동 천사비에는 천사 의 이름도, 얼굴도 나와 있지 않다. 거기엔 다만 이런 소박한 글귀가 적혀 있을 뿐 이다. ‘얼굴 없는 천사여, 당신은 어둠 속의 촛불처럼 세상을 밝고 아름답게 만드는 참 사람입니다. 사랑합니다.’ 정말이지 ‘사랑’만 있다면 우리는 누구나 천사가 될 수 있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을 ‘얼굴 없는 천사’ 또한 어딘가에서 노송동의 변화를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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