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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사회에 복고의 바람이 불고 있다. 신도심의 대형 쇼핑몰과 패밀리 레스토랑, 멀티플렉스 영화관에 밀려난 것처럼 보였던 구도심이 살아나고 있다.
어린 시절 시에서 가장 컸던 금은방과 이름만 들어도 아는 약국, 가장 오래된 음식점과 양장점이 밀집되어 있던 구도심. 그곳에 시간조차 앗아가지 못한 보물이 있었으니, 바로 ‘향수’가 오늘날 지역을 살리는 묘약이 되고 있다.
‘유행은 20년을 돈다.’ 라는 말이 있다. 70년대 유행하던 노래들은 90년대 태생의 가수들에 의해 리메이크 되고, 할머니의 옷장에 있 던 낡은 스웨터는 새로운 디자인으로 최신 유행잡지에 소개된다. 20년의 시간을 거치며 옛것은 조금 특별하고 더욱 새로워진 모습 으로, 그러나 용감하게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온다.
청주 구도심 중앙동은 바로 이 유행에서라면 한때 부러울 것 이 없던 곳이다. 역(驛)은 물론 청주시에서 유일한 극장이 있었고, 가장 큰 시장이 있었으며, 밤이 되면 선남선녀들이 모이는 나이트 클럽이 있던 곳이었다. 하지만 1990년을 기점으로 중앙동은 내리막 을 걷기 시작한다. 도심외곽지역들의 발달과 고속터미널 등 주요 시설들이 신시가지로 이전하면서 중앙동의 상권경쟁력이 점차 하 락하게 되었고, 거주인구는 물론 활동인구도 줄게 된다. 1990년 이 후 청주시의 인구는 늘어났지만, 꼭 그에 맞는 비율로 중앙동의 인 구는 감소하게 된다. 중앙동 사람들은 물론, 새로 유입된 인구도 찾지 않는 그저 그런 심심한 동네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십 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는 말은, 부정적인 뜻에서 중앙동에 꼭 들어맞았다. 십년의 세월을 지내며 중앙동은 폭삭 늙어버린 동네가 되었다. 더 이상 열차가 다 니지 않는 청주역은 덩그러니 남겨졌고 가게들은 하나 둘 문을 닫 았다. 화려했던 나이트클럽도, 사람들을 울리고 웃겼던 극장마저 문을 닫았다. 사람들로 북적이던 거리는 간신히 사람그림자가 비칠 정도로 황량해졌다. 중앙동은 그렇게 청주시 최대의 중심지에서 최 대의 슬럼가로 쇠락해가고 있었다.
이 시절 중앙동 거리를 찍어 놓은 사진. 500m 남짓한 거리에 행인 은 겨우 세 사람 뿐이다. 차는 한 대도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쇠퇴현상을 막기 위해 시에서는 중앙동의 가장 핵심 지역인 중앙로의 물리적인 환경을 개선하는 사업을 실시했다. 그 렇게 2004년 중앙로 일부에 소나무길이, 이후 2006년부터 2012 년까지 3차에 걸쳐 차 없는 거리가 조성되었다. 하지만 사업 과정 은 순탄치 않았다. 상가 간판을 가린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상인 들로 인해 거리에 나무 한그루도 심지 못하게 되거나, 가게운영 과 주차문제로 인한 고질적인 반대자들을 설득시키지 못해 시공 과정에서 지속적인 민원이 발생하기도 했다. 당시엔 주민 역량도 낮아 복사열이 가중되는 보도바닥 재료를 선택해 한여름에 다닐 수 없는 길을 만들어버린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시행착 오는 중앙동 주민들에게 무엇보다 주민 스스로의 역량이 중요하 다는 교훈을 심어주었다.
협의회는 지속적으로 전문가 집단과의 교류를 모색해 왔다. 주로 충북대학교가 도움의 주체였다. 황희연 명예교수의 자문을 바 탕으로 주민위원회와 청주시는 중앙동의 정체성을 문화·예술 1번 지로 굳히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2014년 국토부 도시활력증진지역 개발사업에 선정되면서 인프라를 확충할 수 있는 재정적 기반을 마 련할 기회를 얻게 된 것이 사업의 모멘텀이었다. 충북대학교의 전 문성과 도시재생추진위원회의 에너지 그리고 청주시의 적극적 지 원이라는 삼박자를 갖추게 된 중앙동은, 다양한 사업을 성공시켜가 며 청주시 전체에 새로운 중앙동의 존재를 알려나가게 된다.
협의회가 낳은 가장 중요한 인물은 도시재생추진협의회장 권순택 씨다. 권 씨 역시 다른 협의회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중앙동에서 나 고 자랐다.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권 씨는 IMF때 회사를 나오게 되 면서 아버지 소유의 건물에 초밥집을 차리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 만 그땐 이미 중앙동에 사람들이 하나 둘 빠져나가기 시작하고 있 던 시기였다. 꽤나 규모 있게 사업을 시작했지만 중앙동의 쇠락과 동시에 권 씨의 초밥집도 손님을 조금씩 잃어가기 시작했다. 특히 2003년 영화 ‘친구’를 마지막으로 중앙극장이 문을 닫으면서 매출 은 하루가 다르게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상황이 그렇게 되자 권 씨는 직원들을 하나 둘 내보내야만 했고, 결국엔 카운터를 보던 아 내에게 설거지를 맡겨야 할 정도로 상황이 악화되었다.
권 씨는 곧 이러한 상황을 겪고 있는 것이 본인뿐만이 아니라 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먹구름은 권 씨의 초밥집 뿐만 아니라 중 앙동 거리 전체에 짙게 드리워져 있었던 것이다. 오랫동안 중앙동이 흥했던 시기를 보면서 자라온 사람들이었던 만큼, 중앙동의 빠 른 쇠락은 비현실적이었다.
“가끔 여기 방문하시는 분들 중에서 제게 어떻게 해서 이 일을 하게 됐냐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제가 무슨 전문가라도 되는 줄 알고요. 저는 제가 살기위해서 했다고 대답합니다. 정말 절박했 거든요. 그런데 그런 사람이 저 혼자가 아니었던 거죠.”
가장 황량했던 시절에 주민협의회가 싹을 틔웠다는 사실은 아이러 니하다. 저마다 타들어가는 속을 안고 모여, 어떻게든 궁지에서 벗 어날 방안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댄 것이다. 그렇게 스무 명 남짓의 주민들이 뜻을 모아 협의체를 만들었다. 뭔가 이름이 필요할 것 같 아 옆 동네를 따라 발전위원회라는 이름도 붙였다. 그렇게 주먹구 구식으로 만들어진 공동체였지만, 의지만은 대단했다. 하지만 그때 의 당사자인 주민들 중 누구도 자신들이 만든 공동체로 인해 중앙 동이 이렇게까지 변하게 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랬던 주민 들은 이제 스스로를 ‘멈출 수 없는 자전거’라고 부른다. 이러한 에너 지는 중앙동만의 특수한 공동체 정신으로 자리잡았다.
“당시엔 도시재생이랑 개념조차 없었어요. 그런데 꾸준하게 모여서 의논하고 의견 조정하고 다시 아이디어 회의하고 그러다 보니 저희 가 하고 있는 게 다름 아닌 도시재생이라는 걸 알게 된 거죠.”
시의 도움 없이 100%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발전위원회는 몇 년간 의 시행착오 끝에 점차 크고 작은 성과를 가져오게 되었고, 보다 전 문적인 공동체를 표방하기 위해 2011년 ‘중앙동 지역특화 및 상권 활성화 추진위원회’로 개명도 했다. 이때는 이미 청주시와 청주대 학교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위원회로서의 역량이 갖추어져 있던 시기였다. 그러다 2013년 지금의 이름으로 바꾼 뒤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발전위원회라는 이름의 역사와 함께 중앙동은 다시 돌아온 십 년 남짓의 시간동안 변신에 변신을 거듭했다. 중앙로는 20년 전 만큼 화려하진 않더라도, 보다 의미 있고 예술적인 거리로 거듭나 고 있다. 이러한 변신은 언제까지고 계속될 것 같던 불황도 걷어냈 다. “장사하시던 사람들이 떠나면서 비어 있는 건물이 참 많았어요. 저희 건물도 그랬죠. 그런데 최근엔 그렇게 오랫동안 안 나가던 건 물에 세가 나갔어요. 비싸게는 아니지만 섭섭하지 않은 값으로요. 이제 새로운 사람들이 이 동네로 모여들고 있고요, 저는 정말 이런 변화가 만족스럽고, 행복합니다.” 권순택 씨는 이제 초밥집을 접고 지역 활동가로서 제2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중앙동 변신의 첫 번째 시도였던 소나무길. 친환경적으로 거리를 조성하기 위해 30m 높이의 소나무를 15 그루 심었지만 환경에 맞지 않아 한그루를 제외한 나머지 나무가 고사했던 기억이 있는 곳이 다. 살아남은 한그루의 나무가 높이 뻗어나가는 동안, 다른 나무들 이 고사했던 자리엔 다양한 수목과 초화류, 그리고 물길로 구성된 녹색환경이 조성되었다.
소나무길은 이제 중앙로의 상징으로 통한다. 주민들이 자발 적으로 골목 환경개선을 진행하면서 조명과 벤치, 길거리 화단이 조성되었다. 중앙로를 중심으로 골목골목마다 아기자기한 상점들 이 자리 잡았고, 화실, 문화 공간, 커피 숍 등으로 버려져 있던 건물 들이 하나 둘 채워지면서 번화가였던 중앙동이 독특한 옛 공기를 담은 예술적인 골목으로 변신하게 되었다.
2016년은 중앙동에 있어서는 의미 깊은 한 해였다. 오랜 시간 동안의 노력이 드디어 다양한 문화 콘텐츠로 꽃을 피웠기 때문이 다. 처음 청주시 청년 창업자들과의 연계로 시작된 프리마켓이 이 제는 매주 토요일 다양한 시민들이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을 판매 하는 곳으로 유명해졌다. 수공예품들과 시민들의 중고물품들로 꾸 려지는 시장이지만, 처음엔 소매업자들의 기존 상품 판매로 몸살을 앓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꾸준한 모니터링으로 지금은 소나무길 만의 독특성을 지닌 프리마켓으로 자리매김했다. 2016년만 총 1,353 명의 판매자들이 참여했을 만큼 꾸준한 인기를 이어가고 있으며 청 주시 또한 각종 체험부스 및 이벤트 운영으로 행사를 적극 지원하 고 있다.
8,90년대를 주름잡았던 나이트클럽의 열기는 불타는 금요일 저녁의 버스킹공연으로 부활했다. 매주 금요일 저녁 7시, 소나무길 특설무대에서 진행되는 청춘버스킹은 중앙동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한 동력이 되었다. 2016년 총 17회의 공연을 진행하면서 2천여 명이 공연장을 찾았다. 이로 인해 발생한 유동인구는 연간 약 3만 6천 명 정도로 추정된다. 폭발적인 호응으로 시에서는 스탠드를 설치해 뮤 지션들이 보다 안정적으로 공연을 진행할 수 있도록 개선했다.
이처럼 다양한 문화사업의 영향으로 중앙동의 빈 건물들과 점 포들 대부분이 채워졌지만 아직 주인을 찾지 못한 공간 또한 여전 히 존재하고 있었다. 특히 노후한 건물 탓에 활용도가 낮은 중앙시 장 2층 상가들은 대부분 비워져 있는 상태다. 이러한 빈 점포를 활 용해 도시재생 프로그램을 기획하자는 뜻에서 시작된 ‘소나무길 아 트페어’는 중앙동의 새로운 정체성을 확실히 세상에 보여준 행사다.
건물주가 무료로 제공한 중앙시장 2층에서 진행된 행사는, 오 롯이 주민들의 손으로 만들어나간 청주 최초의 주민주도형 미술 전 시행사였다. 주민 스스로 “한번 해보자!”는 마음을 가지고 적극적으 로 이끌어 갔다. 그 결과 아트페어는 중앙동의 열정과 변화를 알리 는 가장 중요한 계기가 된 동시에 사업추진의 가장 큰 원동력이 되 었다. 주민들은 손수 건물을 수리하고 미술 전문가들을 초청해 운 영위원회를 구성하며 전시를 기획해 나갔다. 행사 홍보부터 작품 접수까지, 전기 설비부터 작품 전시까지, 어느 하나 주민들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주민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 행사에 참여했을 까. 어쩌면 중앙동을 중심으로 지난 20년간 있었던 굴곡진 변화들 을 예술을 통해 전달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주민들의 이러한 마음 이 통한 것인지, 소나무길 아트페어는 그동안 중앙동을 잊고 지낸 청주 시민과 중앙동을 잘 모르던 청년들에게 오랫동안 청주시의 중 심으로 활약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중앙동의 존재를 새로이 각인시 켰다. 한 방송사가 행사를 취재하러 왔다가 기부금을 내놓고 다큐 멘터리까지 제작해 준 일화가 있을 만큼, 소나무길 아트페어는 예 술품 이전에 주민들의 진심을 널리 알린 행사로 남았다.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기반으로 중앙로는 이제 누군가가 주도적으로 판을 벌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한쪽에서 연주를 하고 자신의 작품 을 판매하는 젊은 예술의 거리가 되었다.
요즘 중앙동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청년층이다. 다양한 문화 콘 텐츠를 기반으로 중앙로는 이제 누군가가 주도적으로 판을 벌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한쪽에서 연주를 하고 자신의 작품을 판매하는 젊은 예술의 거리가 되었다.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성공은 처음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차 없는 거리’라는 선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사실 차 없는 거리 조성사업은 당시 발전위원회가 제안한 사업이었다. 청주시에 아직 보행자 도로가 많지 않았던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제안이었지만, 위 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당시 중앙동의 상황은 막막했 다. 600명의 서명을 받아 청주시에 제안해 진행된 사업이었지만, 사업 직후의 성과는 미미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소나무길에 심 어둔 대부분의 소나무들이 말라죽으면서, 중앙동의 가슴앓이도 더 깊어지는 듯 했다.
차 없는 거리를 만들려는 시도가 ‘차량만이 아니라 사람까지 없는 거리’로 만들어버렸다는 비판. 그리고 가뜩이나 황량한 거리 에 소나무 한그루만 덩그러니 남아있던 당시 중앙동의 풍경에 누구 보다 좌절했던 것은 중앙동의 주민들이었다. 특히 서명을 받아 일 을 추진한 위원회로서는 자책감과 책임감에 그 어느 때보다 어깨가 무거웠을 것이다. 하지만 2014년 ‘문화 ·예술 특성화를 통한 중앙동 상권 활성화 사업’이 시작되면서 중앙동은 이 ‘차 없는 거리’ 덕을 톡톡히 보기 시작했다. 아니, ‘차 없는 거리’가 아니었다면 오늘날의 중앙동은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구분 | 2016년 소나무길 프리마켓 업종 및 참가 셀러 수(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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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예품·액세서리 | 의류 | 먹거리 | 중고물품 | 기타 | 총계 | |
2016.03~11 (총 33회) | 668 | 93 | 96 | 119 | 380 | 1,353 (약 41팀/회) |
출처 : 청주시 도시재생과
중앙동이 내리막길을 걸은 십년동안, 다른 지역에서는 주상복 합 아파트가 올라가고, 신축 건물이 들어서는 변화가 있었다. 중앙동 의 입장에서는 낡은 건물들을 다 부수고 새 건물을 지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그러한 변화를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중앙동이 주 로 차를 타고 이동하는 가족단위의 관광객들을 포기하는 대신 아직 뚜벅이 생활을 하고 있는 젊은 층에 초점을 맞추게 된 데는 이러한 배경이 있었다. 구도심의 이점인 대중교통 접근성을 살리면서, 보행 자들을 끌어들여 골목을 살리고, 작은 가게들의 매출을 끌어올렸다.
처음엔 반신반의했던 주민들도 이제는 변화를 받아들이는 한 편 좀 더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찬성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언제나 반대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런 과 정을 거치면서 공동체가 단단해져간다는 사실일 것이다.
“다른 지역 얘기를 접하다보면, 의외로 자기 주차공간을 포기하지 못해서 상점 앞 주차공간을 스스로 포기하는 사례가 많더라고요. 공용주차장에 내야 하는 주차료가 부담된다는 이유로 더 많은 보행 인구의 유입 가능성이 막히고 마는 거죠. 우리 주민들 같은 경우에 는 이런 차 없는 길에 대한 두려움은 완전히 사라졌어요. 이번 도로 정비사업 때는 최대한 면적을 좁히자, 아예 차량 속도가 30Km/hr 이하 존으로 만들어 버리자는 의견이 대부분이었을 정도로요. 변화 가 성공적이었던 만큼 주민들의 생각도 변한 거죠.”
이제는 상인들 스스로 차 없는 거리가 사람을 끌어들이고 그것이 매출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터득했다. 위원회와 시정에 믿음이 생긴상인들은 이제 공사에 대한 불편함 쯤은 아무렇지 않게 감수한다. 더 나아가 최근엔 사비를 들여 조명을 설치하고 벤치를 놓거나 길 거리 화단 등으로 거리 환경을 조성하며 자연스럽게 상점 앞 주차 를 막는 상인들도 생겨났다. 그러다보니 골목 자영업자들 간의 유 대도 생겼고 골목 분위기도 아늑하고 깨끗해졌다. 물론 보행자들은 그런 곳에 모이기 마련이다.
출처 : 청주시 도시재생과
권순택 대표는 공동체의 가장 큰 변화를 ‘자신감’으로 꼽는다.
“원래 청주시에서 가장 좋은 지역으로 손 꼽혔는데, 언젠가 부터 는 다른 지역에 사는 주민들이 중앙동에 대해 한물 간 동네라는 인식을 갖는 것 같더라고요. 근데 저희들이 손수 노력해서 방송 도 타고, 젊은 사람들도 모여들고…. 우리 주민 스스로 우리가 살 아가는 지역을 다시 살려냈다는 자부심, 그만큼 중요한 게 또 어 디 있을까 싶어요.”
이제 중앙동은 청주시 뿐 아니라 타 지자체에서도 재생사업의 롤 모델로 통한다. 작년에만 총 12개 지자체에서 520명이 도시재생 추진협의회 사무실을 다녀갔을 정도로 중앙동의 인기는 뜨겁다. 그렇다면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젠트리피케이션에는 어떻게 대 처하고 있을까? 이에 돌아온 대답은 중앙동의 오랜 주민자치 경 험만큼이나 현실적이었다.
“저는 젠트리피케이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장의 순리라고 생 각해요. 중앙동에서 많은 변화를 겪다보니 점포들의 사정이 다 제각각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어떤 사업에 대한 반응도 찬성과 반대를 떠나 다 나름의 사정이 있는 거죠. 어떤 점포들은 차가 있 는 거리가 낫다고 판단하겠지만, 어떤 점포들은 그렇지 않겠죠. 이동은 그러한 자기 가치판단에 맞게 이뤄져야 해요. 그러한 판 단이 가능하려면 그만큼 많은 선택지를 만들어 줘야 한다고 봐 요. 사업 대상지가 확장되고, 접근이 가능한 다양한 골목을 만들 어주면 임대료도 다양해지겠죠. 그렇게 시장이 변화하면 각자의 이해에 맞는 곳으로 이동도 가능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그러한 선택권이 점포 업자들의 권리가 아닐까요.”
평생 행운만 따르는 삶이 세상에 있을까? 시간이 흐르면 좋았던 일이 위기를 겪기도 하고, 계속될 것 같던 고난이 어느 순간 빛을 보기도 한다. 중앙동의 사례는 지역사회 또한 시간에 따라 끊임 없이 변화하는 유기체라는 명료한 사실을 깨닫게 한다. 다만 중 앙동은, 노력을 통해 스스로 행운을 만들어나갔을 뿐이다. 하나 의 생명처럼, 지역사회 역시 주민들의 끊임없는 사랑과 관심에는 그에 맞는 보답을 되돌려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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