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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는 최근 부쩍 늘어난 관광객들로 전에 없던 호황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1차 산업이 전체 산업의 12%를 차지하고 있는 제주도. 그래서 대대로 섬을 지켜온 토박이 주민들에겐 하루하루의 날씨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천혜향·감귤을 비롯한 맛좋은 특산품들을 지켜내기 위해 발 빠르게 첨단 기술을 구축해 나가고 있는 제주도의 스마트한 이면을 만나보자.
최근 제주도 하면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다. 아름다운 자연환경, 느릿느릿한 라이프스타일, 이효리의 민박집, 다양하고 맛좋은 음식…. 하지만 이런 이미지들이 제주도의 전부일까? 관광 등의 3차 산업이 약 70%를 차지하고 있는 제주도이지만, 1차 산업은 여전히 제주도를 떠받치고 있는 중요한 기둥이다. 제주도의 농부들은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매일 같이 과수원에 나가 일을 하고, 기온이 떨어지면 행여나 작물들이 피해를 입지는 않을까 마음을 졸인다. 유독 날씨가 변덕스럽다는 제주도. ‘IT접목예방시스템’을 활용해 농민들을 영리하게 돕고 있는 제주도농업기술원을 찾아가 보았다.
한반도 최남단에 위치한 제주는 매년 2~3개의 태풍이 지나가는 길목이기도 하다. 한라산을 비롯해 367개의 오름과 56개의 건천으로 인해 1,849㎢의 면적 안에서도 다양한 기후변화를 보인다. 지형적인 요인으로 제주에서는 서리, 돌풍, 폭우 등으로 인한 작물 피해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제주 작물에 가장 큰 피해를 가져다주는 서리는 주로 3월 중순부터 5월 상순 사이에 발생한다. 서리가 제주의 특산 품인 감귤을 비롯해 하우스 키위, 겨울감자 등에 끼치는 피해는 막대하다. 피해 예방책에 대한 끊임없는 요구에 비해 뾰족한 수는 없던 상황에서, 전임이던 신양수 과장이 아이디어를 낸 것이 2009년 이었다. 당시에도 극심한 서리 피해를 입고 있었지만 믿을만한 기상 예보시스템이 없어 농가피해에 대처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처음에는 업무관련자들이 듣기에도 맹랑한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신양수 과장이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겨울 감자였다. 겨울 감자는 서리를 받으면 이파리가 검게 타버린다. 한번이라도 서리를 맞고 나면 농가 피해가 막심한 상황이었지만 자연 재해를 막을 수도 없는 노릇. 농업지도사 입장에서는 안타까움이 컸다.
“될 수 이실껀가이? (될 수 있겠습니까?)”
“방법이 있을건대게. (방법이 있을 텐데요.)”
그렇게 처음 센서를 설치해서 온도를 측정한 것이 출발이었다. 그리고 그 내용을 주민들에게 SNS로 전달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반신반의한 사업이었지만 예산 계획을 올리고 채택이 되고 뿌리를 내리며 점차 업그레이드되어 갔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벌써 10년 전의 일이다.
사업을 시작한 것은 신양수 과장이었지만, 이후 뿌리를 내리게 도운 것은 후임인 강병수 계장이었다. 처음엔 농가에 SNS로 센서 내용을 전송하는 것이 전부였지만 이후 스마트폰 보급이 활성화되면서 기상정보를 실시간 전달할 수 있는 어플리케이션 ‘제주영농정보’ 개발이 이루어졌다. 현재는 농업인 개개인의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영농상담 메뉴도 개설되어 운영되고 있으며 농업인들과 전문가들 간의 다양한 정보교환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온라인 커뮤니티도 활발하게 운영 중이라고 한다.
지난 10년 간 제주도 농업환경에 최적화된 기상시스템을 구축해 나가는 과정에서 가장 크게 영향을 끼친 요인 중 하나는 기술 장비의 발달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상관측 장비의 변천사를 잠깐 훑고 갈 필요가 있다. 과거의 기상관측은 토양수분이라는 장치에 의존하고 있었는데, 이 장치는 자그마한 블록을 토양 속에 묻고 수분을 측정하는 원리로 가뭄을 대비하는 장치다. 그러다가 디지털 온도계를 농가에 보급해서 전날 온도와 새벽 최저온도를 아침에 전화로 물어보는 방식으로 기록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2008 년의 일이다. 현재의 자동기상관측장비 시스템은 2013년에 마련되었다. 자동기상관측장비 시스템의 도입은 제주도 기상관측에 혁명 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각지에 38개의 관측소를 설치해 가동했고, 이슬점, 이슬지속, 토양 수분 등을 비롯한 9개 기상요소를 지속적으로 관측하기 시작했다. 관측된 자료들에 대한 문자 전송 서비스를 시작한 것은 2009년이지만 현재는 더 정확한 정보를 약 3,000여 농업인에게 자동으로 전달하고 있다.
예전에는 사람이 직접 전송하는 방식이었지만 이제는 새벽에 0도 이하가 되면 자동으로 문자가 전송된다. 2012년 구현된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에도 동시에 정보가 전달된다. 농업기술원의 정보는 농업인을 위해 보다 세밀한 지역 정보라는 점에서 기상청과는 차별화된다. 이러한 시스템이 마련되기까지의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현재는 100억 원 이상의 피해를 경감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 다. 10년 동안 차근차근 발전해 온 IT 접목 예방시스템의 가능성은 아직 무궁무진하다.
출처: 제주도농업기술원
얼마 전 새가 둥지를 튼 고가의 기상장비 사진이 SNS에 떠돌면서 논란이 된 적이 있다. 그만큼 관리가 힘든 것이 기상장비이기도 하다. 제주도의 IT 접목 예방시스템이라고 완벽할 수 있을까? 어쩌면 인간만큼이나 다루기 힘든 것이 기계일 것이다. 특히 자연환경을 측정 하는 기상장비의 경우, 주변에서 불을 피운다거나 장비가 물리적으로 손상될 때 오류 발생 빈도가 높다. 지속적으로 센서에 오류가 있는지 들여다볼 수도 없기 때문에 무엇보다 담당자의 업무에 대한 애정이 중요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제주도농업기술원의 시스템 또한 지난 10년 간 크고 작은 문제를 일으켰다. 특히 문자가 자동전송으로 전환된 이후에는 업무가 편해진 만큼 신경을 더 쓸 수밖에 없었다. 주변 환경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센서를 사용하기 때문에 잘못된 센서 반응으로 문자가 가게 된 경우도 있었고, 한글 인식 오류로 의미를 파악하기 힘든 외래어로 전송된 적도 있었다. 이러한 오류들은 자연재해와 마찬가지로 완벽하게 없애기는 힘들다. 다만 한 가지 방법이 있다면 지속적으로 오류를 체크하고 상황을 기록해서, 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것을 방지하는 것뿐이다. 더욱이 날씨는 사람들의 일상, 업무와 직결되는 사안이기 때문에, 다루기가 예민한 정보이다. 날씨에 따라 일희일비해야하는 농업인들의 마음을 감안하면 정확하고 시기적절한 정보 전달에 더욱 주의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강병수 지도사의 노력은 단순하다. 항상 시스템을 점검하고,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제주 지역 38개 관측소를 다 돌아볼 수는 없지만, 기상청에 있는 시스템부터 우선적으로 챙기려고 해요. 점심 먹고 돌아보기만 해도 시스템이 잘 작동되고 있는지, 기계 상태에 대한 대략적인 추측이 가능하거든요.”
지속적으로 생각하고, 연구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업무가 몸에 뱄다고 할까. 무엇을 물어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이 나올 만큼 시스템에 대해서는 통달했다. 새로운 정보를 얻기 위해 개인 시간을 할애해서 기상청을 방문할 만큼 열정도 대단하다. 강병수 지도사가 4년째 일을 맡아 오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업체와의 의견 조정이었다고 한다. 국내에 기상장비를 다루는 업체의 수가 많지 않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다루는 업체가 다르다보니, 담당이 직접 업체의 업무를 파악하고 중간에서 의견을 조율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아직은 사람이 실시간으로 모니터링을 해야 하기 때문에 담당자가 업체 관리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에요. 업체에서 책임감을 갖지 않으면 정보가 구멍이 날 수 있거든요. 정보에 구멍이 나면 그 피해는 오롯이 농민들이 입게 되는 거죠. 이제는 서로 마음을 알기에 어느 정도 신호만 주어도 상황을 파악할 수 있을 만큼 경험이 쌓였어요. 그 과정에서 목소리가 커진 적도 여러 번이었죠.”
그 과정에서 강병수 지도사는 몹씬 계장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몹씬은 제주도 방언으로 ‘사납다’는 뜻이다. 하지만 강병수 지도사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자상한 관리자가 된다. 현재 부서에서 운영하는 네이버 밴드의 회원은 280명에 이른다. 대부분이 정보를 필요로 하는 제주 농업인이다. 밴드에서는 전문 인력들과 농민들이 함께 자연스레 농업과 기상에 대한 정보를 교환할 수 있다. 특히 작물별로 운영되고 있어 활용도가 크다.
2017년 장비 오류를 접수하고, 교체할 수 있었던 것은 이렇게 상호 피드백이 꾸준하고 원활하게 진행되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아무리 기계가 발달하고 자동화 시스템이 도입되어도, 정보라는 것은 결국 사람이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스템의 도입으로 이제는 10분 단위로 자료가 계속 업데이트되어 들어오고, 10분 간격의 기상 요소 데이터를 온/오프라인을 통해 지속적으로 업로드된다. 세상 좋아졌다고 하지만 강병수 지도사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느낀다. 시작보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유지관리라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도의 변화무쌍한 날씨만큼이나, 제주도 농업인이 입는 작물피해는 다양하다. 태풍피해와 같은 자연재해는 물론 인력으로는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서리나 저온으로 인한 피해는 상황을 잘 파악하고 유연하게 대응하기만 한다면 큰 피해로 이어지는 것은 막을 수 있다. 제주 특산품으로 유명한 노지감귤의 경우, 상품으로 출하하면 1kg 당 1,500원인 것이 서리 피해를 입게 되면 150원이 되어 10 분의 1로 가치가 떨어져 버린다. 맛좋은 레드키위의 경우에도 일단 한 번 서리 피해를 입게 되면 천 평에 5천만 원 정도의 손해를 보게 된다고 한다.
서리는 해가 지고난 후의 하늘을 보면 알 수 있다. 맑은 날 구름 한 점 없고 평온한 상태로 태양이 내리 쬐면 지표면의 온도가 올라 간다. 그런데 해가 진 후 구름이 그 열을 잡아주지 못하고 지표면의 온도가 날아가면 지상의 온도가 급격하게 떨어지게 된다. 따라서 서리는 수증기가 식물체의 표면에 얼어붙기 쉬운 늦은 가을부터 이른 봄까지 발생하는 자연현상이다. 서리가 농가에 피해를 입히는 시기가 이른 봄이라는 점 때문에 제주도에서는 주로 봄철에 생육이 시작되는 노지감귤, 키위, 만감류가 시스템의 혜택을 크게 보고 있다.
인간이 기상변화를 막을 수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하지만 오랜 시간 축적된 데이터들은 피해를 입은 농가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될 수 있다. 제주도농업기술원에서는 매번 발생하는 피해를 줄이기 위해 백서를 만들었다. ‘피해백서’는 2016년도 1월 24, 25, 26 일 3일간의 서리 피해를 관찰하고 기록한 책이다. 3일 동안 36개 지점에 대해 온도가 얼마나 내려갔는지를 분석해 데이터를 뽑고, 1 분 간격으로 촘촘히 데이터를 분석해 최저온도와 경과시간 등이 작물에 미치는 영향을 기록했다. 특히 피해 유형별로 감귤 등 지역 특산품의 상태를 일목요연하게 사진으로 기록해, 피해가 종료된 이후 3월까지 정리된 자료들을 정리했다.
재해 | 작목 | 대상면적(ha) | 정상수량(톤/ha) | 감소량(톤/ha) | 단가(천 원/톤) | 손실액(백만 원) | 비고 |
---|---|---|---|---|---|---|---|
서리 | 노지감귤 | 800 | 30 | 15.5 | 700 | 8,400 | 수량감소 |
만감류 | 300 | 40 | 1.2 | 4,000 | 1,440 | 수량감소 | |
키위 | 10 | 45 | 22.5 | 4,000 | 900 | 수량감소 | |
강풍,태풍 | 하우스감귤 | 4,000 | 100.0 | 4,000 | 2,400 | 피복비용 |
출처: 제주도농업기술원
이처럼 쉽지 않은 작업을 진행한 이유는 단 하나다. 비슷한 피해가 발생하게 될 경우 참고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자료들은 피해를 방지하고 대응하기 위해서도 중요하지만 실제 피해 발생 시 농가가 보험지원을 받을 수 있는 법적 근거 자료로도 활용된다. 자연재해가 발생할 경우, 농가에서 겪는 가장 큰 어려움 중의 하나는 이에 대한 보상을 받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피해백서’를 비롯해 제주 IT 접목 예방시스템에서 활용되는 다양한 데이터들은 피해 근거 산출자료로 활용되거나 피해 보상 자료로 활용된다. 그동안 다양한 자연재해로 인해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농가에서는 직접적인 근거 자료가 없어 피해 보상에 많은 어려움을 겪어왔다. 이렇게 첨단 기술이 활용되어 기록된 데이터들은 피해를 미리 예방해 주는 역할도 하지만 어쩔 수 없는 피해를 입은 경우 법적인 근거를 만들어 주는 역할도 해내고 있다.
제주 IT 시스템이 보여주고 있는 4차 산업 모델의 미덕은 ‘자연스러움’에 있다.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실제와 가상을 넘나들게 될 4차 산업혁명. 앞으로 AI가 인간의 역할을 대신하게 될 것이라는 말은 기정사실이 되어간다. 하지만 AI는 결코 백지 상태에서 인간을 대신하지는 않을 것이다. 때문에 미래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 중 하나는, 바로 인간이 구축해 놓은 데이터다.
매일 밭으로 나가 작물을 확인하고 그 작물이 무사한지를 확인하는 농사일처럼 단순한 일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그 단순한 일은 사실 변화무쌍한 공기의 흐름, 대지의 온도 변화, 그리고 빛에 대한 민감한 대응이라는 점에서 가장 복잡 미묘한 일이기도 하다. IT 접목 예방시스템이 해 나가고 있는 것이 바로 그런 미묘함을 시대에 걸맞게 적용하는 일이다. 농업기술원에서 장비의 확대보다는 효율적 관리에 집중하려는 이유가 그것이다.
앞으로 농업기술원에서는 제주지방기상청과 합심하여 서리예측 시스템을 정교화해 나갈 전망이다. 특히 각각의 농가에서 효율적으로 정보를 활용할 수 있도록 의료기록처럼 개별적인 농가 특성에 맞는 정보를 제공하는 방안을 고려중이다. 제주도의 기후 특성을 고려한 이 시스템이 현실화되면, 앞으로 농가에서는 보다 정확하고 빠른 정보를 더 전문적으로 제공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더불어 제주도에 매년 피해를 입히는 태풍에 대한 알고리즘 분석 시스템도 구축해 나갈 전망이다. 이 사업을 모티브로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에서 연구개발한 ‘기상이변 대응 농업기상재해 조기경보서비스 시스템’이 2018년부터 전국 농업기술센터에 시범사업으로 보급되고 있다.
농업기술원에서는 제주지방기상청과 합심하여 서리예측시스템을 정교화해 나갈 전망이다. 특히 각각의 농가에서 효율적으로 정보를 활용할 수 있도록 의료기록처럼 개별적인 농가 특성에 맞는 정보를 제공하는 방안을 고려중이다
기상청 시스템도 서리 예보를 제공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현재 제주도에서는 유일하게 농업기술원이 서리 예보를 하고 있다. 지금은 획기적으로 사업의 골격을 갖춰 나가고 있지만, 사실 겨울 감자를 서리로부터 보호해 농가피해를 줄이기 위한 단순한 노력이 제주 IT 접목 예방 시스템 사업의 시작이었다. 주민의 필요와 이에 대한 농업기술원의 노력이 자연스럽게 만나 사업을 만들고, 필요에 따라 첨단 기술을 활용 하게 된 것이다. 어쩌면 도래할 4차 산업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변화무쌍한 날씨를 성실히 기록하며 자연재해에 대비해 온 인간의 단순한 지혜에 기술을 더한 제주도농업기술원의 노력은, 다가올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가장 인간적인 대응 방식을 제시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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