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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보다 더 나은 행복을 꿈꾸는 사람들은 많다. 하지만 행복에는 사 람들과 갈등하고 화합하는 지난한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는 사 람들은 많지 않다. 대구시 남구 이천동은 행복한 마을을 만들기 위해 서라면 힘든 시간도 마다않는 용감한 주민들이 모인 곳이다. 그들이 만든 2000배 행복한 마을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하얀 배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한 손 가득 큼지막한 배가 여물던 동 네. 대구시 남구 이천(梨泉)동은 물맛이 배처럼 달고 시원한 배남샘 (배나무 샘)이 있었던 아름다운 배나무골이었다. 젖이 모자라는 산 모들이 배남샘에서 젖 대신 샘물을 호리병에 담아 갔을 만큼 물맛도 좋고 살기 좋았던 이천동. 하지만 역사의 흐름은 평화로웠던 배나무 골을 전쟁의 상처가 반복되는 가장 처절한 곳으로 만들어버렸다.
1921년 일제강점기 시절, 현 남구 이천동 지역에 일본의 대구 지역 식민지 사령부가 설치된다. 일본군의 서슬이 퍼런 식민 치하 를 20년 가까이 견디던 주민들. 하지만 해방의 기쁨을 맛볼 새도 없이 1950년에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대구지역 식민지 사령부 였던 곳은 대한민국 육군의 기지로 사용됐다. 같은 민족을 향해 총 구를 겨누는 나날이 이어졌다. 서로를 적으로 삼아 죽고 죽이는 비 극은 3년 남짓한 세월 만에 끝났지만, 이천동이 다시 배꽃 피는 마 을이 되지는 않았다. 대한민국 육군이 물러난 후인 1953년, 바로 같은 자리에 주한 미군 육군이 ‘캠프 헨리’라는 이름으로 주둔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캠프 헨리 주변에는 보기만 해도 따가운 철조망 을 빼곡하게 두른 회색빛 담장이 솟아올랐다. 이천동에 미군이 주 주민들의 열정, 이천동을 2000배 바꾸다 지금보다 더 나은 행복을 꿈꾸는 사람들은 많다. 하지만 행복에는 사 람들과 갈등하고 화합하는 지난한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는 사 람들은 많지 않다. 대구시 남구 이천동은 행복한 마을을 만들기 위해 서라면 힘든 시간도 마다않는 용감한 주민들이 모인 곳이다. 그들이 만든 2000배 행복한 마을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주민참여 우수 94 균형발전우수사례 2018 | 대구 남구 95 둔한 지 올해로 65년, 일제강점기 시절 대구지역 식민지 사령부까 지 거슬러 올라가면 무려 10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이천동에는 역 사의 비극을 수차례 겪어낸 전쟁의 상흔이 켜켜이 쌓이고 있었다.
하늘 높이 솟은 미군 부대 담장은 이천동 내의 또 다른 세상이었다. 이천동 주민들은 담장 너머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지 못했고, 담장 안에서도 보안이라는 이유로 아무런 말도 해주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이천동은 대구에서 가장 물맛 좋은 동네에서 가장 낙후된 동네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캠프 헨리의 철조망과 회색 담벼 락은 이천동의 분위기도 잿빛으로 만들었다. 게다가 고도제한으로 3 층 이하 건물만 지을 수밖에 없어 다른 지역에 비해 개발이 지연됐 다. 우리도 잘 살고 싶다는 이천동 주민들의 열망은 점점 커져갔다. 재개발·재건축의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한때 일부 지역은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2013년 4월, 주민들의 커 다란 기대를 모았던 재개발 구역이 해제되면서 상실감과 실망감이 이천동을 덮어버렸다.
이천동 내 건축물의 48%가 지은 지 30년이 넘은 노후 건축물. 이로 인한 안전·재난사고의 위험성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또한 재개 발이 추진·해제되는 과정에서 방치된 폐·공가가 전체 건축물의 5% 나 됐다. ‘깨진 유리창 이론’이 말해주듯 아무도 돌보지 않는 빈 건물 이 늘어나자 쓰레기 불법투기가 횡행했고, 청소년들의 일탈 장소로 활용되기도 했다. 도시가스가 설치되지 않는 등 생활 기반 시설마저 부족했고, 범죄 예방용 CCTV도 적어 언제 어떤 사고가 발생할지 몰 랐다. 이천동 주민센터를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주민 커뮤니티 공간 도 없었다. 이천동은 말 그대로 위기에 처해있었다.
‘흉물’이라고 불릴 만큼 낙후된 마을에서 가능성을 본 사람은 당시 남구 도시경관과 이진숙 과장(現 남구 복지지원과장)이었다. 2008 년, 전국 최초로 도시경관과를 신설할 만큼, 남구는 도시재생 분야에 서 선구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진숙 과장은 2010년 앞산맛둘레 길, 2011년 문화예술생각대로 사업을 성공시키며 얻은 노하우로 이 천동을 2000배 행복한 마을로 만들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을 가졌다. 2011년 8월, 도시활력 증진지역 개발사업 지원 조례를 제정하는데 나섰고, 법적 근거가 마련되자 남구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변화가 생 겼다. 주민들이 이천동의 변화를 위해 두 팔을 걷은 것이다.
시작은 2013년, 주민 스스로 마을의 문제점을 찾아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주민역량강화 프로그램인 ‘대구광역시 제5회 주민참여 도 시학교’(이하 도시학교)였다. 당시 남구 도시재생 담당 팀장 및 담당 자, 주민자치위원장, 고미술거리 회장 등 지역 발전에 관심 있는 주 이천동 복개도로 전 사진 이천동 복개도로 후 사진 96 균형발전우수사례 2018 | 대구 남구 97 민 8명이 도시학교에 참여해 이천동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을 하나 하나 찾기 시작했다. 직접 마을 곳곳을 다니며 살펴보니 이천동의 상 황은 생각보다 훨씬 더 심각했다. 리어카도 들어가지 못하는 좁은 골 목, 장사가 되지 않아 상점이 줄지어 폐점하고 10평도 안 되는 공간 에는 어르신이 홀로 거주했다. 도시학교에 참여하면서 주민들은 문 제점을 찾는 데에만 그치지 않고 본격적으로 이천동을 바꿔보자는 데 뜻을 모았다.
2013년 5월, ‘2014년 도시활력증진사업 공모’에 ‘2000배 행복 마을 사업’(이하 행복마을)이 선정된다. 2014년~2019년까지 6년에 걸쳐 총 135억 원을 들여 이천동 커뮤니티 공간·고미술 테마거리·도 시가스 공급관 매설 지원, 공영주차장 조성 등 이천동의 변화를 꾀할 본격적인 마중물 사업이 태동한 것이다.
2013년 5월, ‘2014년 도시활력증진 사업 공모’에 ‘2000배 행복마을 사업’ 이 선정된다. 2014년~2019년까지 '6년에 걸쳐 총 135억 원을 들여 이천동 커뮤니티 공간·고미술 테마 거리·도시가스 공급관 매설 지원, 공영 주차장 조성 등 이천동의 변화를 꾀할 본격적인 마중물 사업이 태동한 것이다
행복마을 사업이 확정되자 남구와 이천동 주민들은 바쁘게 움직였 다. 남구 도시재생총괄과는 행복마을 사업 전반을 총괄하고, 실무협 의체는 건설·건축·교통과 같은 관련 부서와 협력을 이끌어냈다. 도 시만들기 지원센터는 지역주민과 행정의 중간 가교 역할을 함과 동 시에 주민역량강화 프로그램 기획 및 운영에 앞장섰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좋은이웃자문단과 도시닥터는 사업 추진 과정에 있어 주민 들의 멘토 역할과 자문을 도맡았다.
행복마을 사업에 있어 주민참여가 두드러지는 부분은 지역주 민으로 구성된 ‘좋은이웃협의체’다. 남구는 다양한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하면서 주민참여가 도시를 바꾸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행복마을 사업은 아예 기획 단계에서부터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 및 반영할 주민주도형 도시재생사업이 되기를 바랐다. 좋은이웃협의체를 구성하겠다는 소식이 들리자마자 “어떻게 하면 협의체에 참여할 수 있느냐”라며 도시재생과로 주민들의 문의 전화 가 걸려오기 시작했다. 구성 계기는 남구였지만 좋은이웃협의체를 완성시킨 것은 주민들이었다.
2013년 11월, 지역주민 15명과 도시닥터로 위촉된 대구가톨릭 대학교 건축학부 조극래 교수가 한자리에 모였다. 조극래 교수는 주 민들이 도시재생사업을 이해하고 자신의 아이디어가 실현 가능한 사업 아이템으로 발전될 수 있도록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좋은이웃 협의체는 매월 정기회의를 가지며 이천동에서 개선해야 할 부분과 대안을 구체화해 나아갔다. 이천동 내 고미술 문화 거리 조성, 미군 부대 담장 개선, 이천동 주민 자치센터 증·개축 등 굵직굵직한 사업 이 좋은이웃협의체에서 탄생했다. 남구 역시 도시가스 공급관 매설, 주민 커뮤니티 공간 설치 등 물리적 사업을 추진할 때마다 주민과의 소통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매번 사업설명회와 착수보고회, 주민 간 담회를 개최해 주민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사업에 반영하는 절차를 거친 것이다.
나아가 2015년부터 이천동 주민들은 좋은이웃협의체 이외에 자발적으로 소모임을 구성하여 마을 개선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 다. 마을공동체·마을문화·마을환경·마을경제·마을복지 등 주민들 이 관심 있는 의제를 정해 정기모임을 갖고 사업제안서를 작성해 남 구에 정식으로 건의했다. CCTV 설치, 마을 내 텃밭 조성, LED 보안 등 교체 등 이천동 생활환경개선에 꼭 필요했던 여러 사업이 소모임 의 건의로 실제 착수됐다. 좋은이웃협의체는 단순히 지역주민들의 모임에 그치지 않았다. 주민들의 의견을 대신해 행정에 강한 영향력 을 미치는 하나의 주민자치 조직과 같았다.
좋은이웃협의체와 주민 소모임의 활동이 활발해지자, 주민 들이 언제든 편하게 모여 개선 방안을 논의할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안정적으로 모임을 가질 수 있는 공간 이 있다면 이천동 역시 지속 가능한 발전이 이뤄질 것이라는 취 지에 남구도 선뜻 동의했다. 주민 센터 외에 딱히 모임 공간이 없 었던 마을에 주민 커뮤니티 공간이 생긴다니, 이천동 주민들은 가슴이 설레기 시작했다. 2015년에 진행한 디자인 워크숍에는 주민 30여 명이 참여해 커뮤니티 공간에 대한 주민들의 기대를 반영했 다. 커뮤니티 공간 구성과 꼭 필요한 부분을 제시하고 설계에 반 영하는 과정은 주민들에게 행복 그 자체였다. 마을 사업을 본격적 으로 진행하기 위해 ‘이천행복마을 협동조합’ 설립도 추진 중이었 으니 이천동 주민들이 가졌던 희망이 얼마 만큼이었는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행복마을을 위한 커뮤니티 공간 조성이 좋은이웃협의체와 남구의 극단적인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씨앗이 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출처 : 대구광역시 남구 도시재생과
2016년, 좋은이웃협의체가 커뮤니티 공간 조성 계획을 남구에 제출 하고 결과를 기다리던 때였다. 그 시기 동구 대명동의 미군부대 헬 기장 반환이 결정된 후 해당 부지에 대구 대표도서관을 건립한다는 계획이 확정됐다. 그러자 좋은이웃협의체에 참여하지 않은 주민들 의 민원이 남구에 쏟아지기 시작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구립 도서 관이 없던 남구에 도서관을 세워야 한다는 주민들의 목소리가 커진 것이다. 남구는 갈등했다. 좋은이웃협의체의 제안대로 커뮤니티 공 간이 필요하지만 그 이외의 이천동 주민들 의견도 고려해야 했다. 협의체에 참여하지 않은 주민들은 커뮤니티 공간이 생긴다는 소문 을 듣고 도시재생과에 전화해 “도서관으로 바꿔 달라”라고 요구하 기도 했다. 모든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해야 했던 임병헌 전 남구청 장은 과감히 결단을 내렸다. 커뮤니티 공간이 포함된 도서관을 건 립하기로 한 것이다.
좋은이웃협의체의 반발은 거셌다. 협의체 활동이 마비될 정도 로 주민들과 남구 간의 갈등이 격화됐다. 디자인 워크숍 등 지금까지 준비해온 과정이 무시당하고 도서관 건립을 일방적으로 통보했다는 점에서 반발이 어마어마했다. 도서관 안에 북 카페 형태로 주민 커뮤 니티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도 있었다.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 한 임병헌 전 남구청장은 좋은이웃협의체를 직접 만나기로 결심했 다. 협의체 역시 오해만 쌓아가는 것보다 얼굴을 보며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눌 시간이 필요했다.
2016년 3월, 구청장과 좋은이웃협의체가 모여 간담회가 열렸 다. 도서관 건립 결정 이후 첫 대면의 자리. 간담회장에 긴장감이 돌 았지만 임병헌 전 남구청장은 차분히 설명을 시작했다. 주민 커뮤 니티 센터를 건립했을 시 현실적으로 좋은이웃협의체가 운영과 사 후관리를 맡기 어렵고, 현재 대구시에서 유일하게 남구에만 구립 도서관이 없다는 점을 설득했다. 좋은이웃협의체 역시 무조건 반발하기보다는 남구의 뜻을 이해하고 수성구 및 타 지역 구립 도서관 견학을 통해 건물 전체를 도서관으로 사용하는데 합의했다. 그렇 게 2018년 5월,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로 남구의 첫 구립 도서관인 ‘이천 어울림 도서관’이 개관했다. 개관한 지 채 얼마 되지 않았지만 주민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개관 첫 달에는 8천 명에 가까운 주민 들이 이천 어울림 도서관을 다녀갈 정도로 만족도가 높다. 향후 문 화·교육 프로그램이 꾸준히 마련될 계획이라 이용객 수는 더 늘어 날 전망이다.
주민 커뮤니티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협의체의 오랜 바람은 다른 방식으로 이뤄졌다. 2018년 5월, 이천 어울림 도서관에 연접해 있 는 국유지를 활용해 카페를 겸한 2000배 행복마을 사랑방이 탄생했 기 때문이다. 이는 2017년 대구시 생활밀착형 재생사업 공모에 선정 돼 확보한 사업비 1억 8천만 원으로 조성할 수 있었다. 이천 행복마을 협동조합에서 카페·주민들의 회의 공간 운영을 맡았으며, 음악회·사 진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열린다. 바리스타 2인 채용 등 일자리 창 출과 지역 경제 활성화란 효과도 얻었다. 주민과 남구의 갈등은 외려 도서관과 커뮤니티 센터라는 일석이조의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좋은이웃협의체의 시작부터 이천 어울림 도서관 건립과 2000배 행복마을 사랑방 조성까지, 모든 과정에 함께 했던 이천행 복마을 협동조합 장재순 이사장은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남구의 결 정이 유효했다”라며 소회를 밝혔다.
“도서관으로 계획을 변경하기 전에 협의체 주민들과 상의를 했으면 하는 아쉬움은 여전히 있어요. 하지만 이를 계기로 남구 도시재생과와 좋은이웃협의체, 이천행복마을 협동조합 모두 소통이 잘 되고 있으니 전화위복인 셈이죠. 막힌 곳이 뚫려야 진정한 소통이 된다는 걸 주민들과 남구 모두 체득했습니다.”
다양한 의견은 갈등과 대립을 필연적으로 불러오지만 반대로 생각 하면 그만큼 주민들이 자신의 지역에 애정이 깊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천동 고미술 거리 활성화를 위해 테마 거리를 조성할 때도 갈등은 적지 않았다. 이천동 고미술 거리는 한국전쟁 이후 문화재 매매 업소가 모여들면서 1980~1990년대에 호황을 이룬 곳이다. 캠프 헨리의 군인들이 우리나라 전통 미술품에 관심을 보이면서 한때 100여 개 가 넘는 상가가 형성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점차 외국인과 시 민들의 관심이 줄면서 쇠퇴기에 접어들었다. 2017년, 남구는 주민들 의 오랜 상처로 남은 미군부대의 잿빛 담장에 목재 가벽을 세우기로 결정했다. 남구는 미군부대 담장 환경개선 추진 단계에서부터 한·미 친선협의회를 통해 미군 측과 지속적으로 협의를 해나갔다. 하지만 사업시행을 코앞에 두고 캠프 헨리 측에서 보안상의 이유를 들며 반 대 의사를 밝혔고 사업은 중단되기에 이른다. 논의는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다. 캠프 헨리·남구 담당자가 현장 확인 및 간담회를 거 쳤고, 결국 외부인이 담장을 넘어올 수 없도록 가림막을 추가 설치하 는 조건으로 목재가벽을 세울 수 있었다. 행복마을 사업을 진행하면 서 주민들이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자 캠프 헨리 측에서도 마음을 움직였던 것이다.
고미술 거리의 미관을 해쳤던 오래되고 제각각인 간판들을 새 로 정비할 때도 의견 대립이 반복됐다. 이번엔 상가들 간에 찬반이 엇갈렸다. 이천동 고미술 거리 협회는 미등록 상가의 간판 개선에 반 대했고, 미등록 상가 측은 간판 개선 사업은 지역을 위한 사업인 만 큼 모든 상가의 간판을 바꿔달라고 요구했다. 갈등을 해소할 방법은 진정성을 보이는 것뿐이었다. 남구 도시재생과와 고미술거리 관리 부서인 문화관광과가 함께 상인들을 찾아가 사업의 취지를 설명하 고 이천동을 위해 뜻을 모아줄 것을 진심으로 설득했다. 상인들의 불 신 가득한 눈빛에 어깨가 무거울 때도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이 심전심. 민·관이란 차이보다 같은 이천동 주민으로서의 마음이 통하 자 결론은 금세 났다. 모든 상가의 간판을 교체하기로 결정이 난 것 이다. 차도 밖에 없었던 고미술 거리에 보행자 통로를 만들 때도 마 찬가지였다. 보행자 통로를 확보하기 위해 주차선을 그어놓아도 상 인들은 직각 주차를 고집했다. 직각 주차를 하면 한 대라도 더 많은 차를 주차할 수 있지만, 보행자가 걸을 공간이 없다는 단점이 있다. 직각 주차가 아닌 평행 주차를 해달라고 설득할 때면 ‘당신이 뭐냐’ 라며 삿대질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현장 방문 과 설득을 거듭한 결과, 지금은 상인번영회를 조직해 자발적으로 평 행 주차에 나서고 있다. 주민들의 숙원이었던 공영주차장을 추가 조 성함으로써 주차난 해소에도 나섰다. 이천동 박승종 동장은 주민들 의 변화를 생각하면 놀라울 뿐이다.
“예전에 주민들 앞에서 이야기를 할 때는 공무원을 못 믿겠다는 반응이 많았어요. 그러다 이천동에 도서관과 테마 거리가 조성되면서 점점 시각적으로 달라지니 주민들의 마음도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주민들을 뵈러 가면 눈빛부터 다릅니다. 마을을 위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고 행동하려고 하시죠.”
이제 이천동을 이끌어가는 주체는 주민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주민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 설립했던 좋은이웃협의체는 2016년 7월, 조합원 9명으로 구성된 이천행복마을 협동조합으로 거듭났다. 지역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주민 스스로 마을 사 업을 해보자는 뜻이 모인 것이다. 지역 특산품 판매로 얻은 수익금은 마을 환경 정비 사업을 추진해 그대로 지역사회에 환원하고, 2016년에는 마을공동체 지원 사업 ‘마을愛’ 사업 공모를 통해 지 역 독거노인 집수리 지원 사업을 실시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2015 년부터 주민들에게 마을에서 진행되는 사업을 알리고 교류의 장 을 마련하는 축제인 ‘2000배 행복마을 축제’를 매년 개최하고, 도 시만들기 지원센터와 연계해 지역 내 다양한 단체와 주민이 참여 하는 ‘이천 플리마켓’도 열고 있다. 남구시니어클럽, 대봉초등학교 등 지역 내 주민단체와 늘솜협동조합, 주말공대협동조합과 같은 타 지역 협동조합이 함께 모여 소통하는 장이다. 이천동 내 5개 지 역단체가 참여한 주민제안 공모사업에서는 총 5개의 사업이 주민 들을 만났다. 음식 만들기 체험, 어르신 문패를 만드는 ‘내 이름을 찾아줘’, 그림자극, 독거노인 단짝 맺기, 독거노인 생활환경개선 등 다양한 사업은 주민들의 만족도를 끌어올렸다.
이천동의 옛이야기와 역사, 문화를 소재로 도시재생을 홍보하 는 2000배 행복마을 포켓북을 제작하거나 폐·공가 3개소를 주민 행복마을 텃밭 학습장으로 조성해 수확한 작물은 지역사회에 기부 도 한다. 액티브 시니어 육성사업은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많은 이 천동의 특성을 살린 프로그램. 바리스타·스마트폰·집수리 교육으 로 어르신들의 사회참여 기회를 제공한다.
다양한 방법으로 마을의 변화를 모색한 이천동 행복마을 사업 은 대외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다. 7년 연속으로 지역균형발전사업 평가에서 우수등급을 받는가 하면, 2017년에는 대구시 도시재생사 업 추진실적 평가에서 최우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천동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는 타 지역이 벤치마킹하러 방문할 만큼 이미 잘 알 려져 있다. 2017년 7월, 이천 행복마을 협동조합은 마을 발전을 위 한 초석을 다지기 위해 예비마을기업 인증을 받았다. 이천동의 생 활환경이 나아지면서 지역의 발전 가능성을 확인한 민간 기업이 버 려진 적산가옥을 카페로 리모델링해 운영 중이고, 또 다른 기업은 테라스형 공동주택 조성 및 분양에 나설 계획이며, 이천동 내 가로 주택정비사업을 추진할 예정이어서 앞으로 이천동에는 민간투자가 확산될 전망이다.
행복마을 사업을 갓 시작했을 때와 비교하면 이천동에는 엄청 나게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하지만 이천동을 배나무 가득하던 아름 다운 마을로 만들기 위해 남구와 이천동 주민들의 열정은 여전히 뜨 겁게 타오른다. 남구는 캠프 헨리 동편 구간을 마저 정비해 이천동 테마거리 조성을 완료하고, 노후 도로와 하수도 등 기반 시설 정비를 마칠 계획이다. 또한 이천 행복마을 협동조합 등 주민조직의 발전을 위해 이천동 대봉 배수지 인근 지역을 도시재생 뉴딜사업 대상지로 신청할 예정이다.
이천동은 지금보다 2000배, 3000배 더 행복한 마을을 꿈꾼다. 그 과정에서 또 다시 주민과 행정 간의 갈등이 반복되더라도 두려울 것은 없다. ‘비온 뒤에 땅이 굳는다’라는 말처럼, 갈등은 새로운 대안 을 낳는 씨앗이 된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지역주민이 직접 만들 어가는 행복 마을의 미래가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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