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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 서구 비산동에서는 지금 공간의 마법이 펼쳐지고 있다. 수십 년 간 흉물스럽게 방치됐던 파출소가 주민들이 꿈을 키우는 장소가 됐기 때문이다. “우리는 건축물을 만들지만 그 다음에는 건축물이 우 리를 만든다”라는 윈스턴 처칠의 말처럼, 공간이 바뀌자 주민들의 삶 도 바뀌기 시작한 놀라운 이야기가 지금부터 펼쳐진다.
“어서 오세요!” 따뜻한 인사 한 마디가 작은 카페를 가득 메운다. 목 소리의 주인공은 깔끔하게 유니폼을 갖춰 입은 주민 바리스타다. 정 성스레 내린 커피 원액에 시원한 물을 더하니 커피 전문점 못잖은 아메리카노가 탄생했다. 주위에는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는 사 람들도 보인다. 대구시 서구 비산동의 주민 커뮤니티 공간 ‘원고개 다락방(多樂房)’에는 그 이름처럼 주민들의 즐거움이 가득하다. 비 산동 주민이 직접 만드는 커피에 이웃과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으니 어찌 즐겁지 아니할까.
다락방이 생기기 이전에도 비산동은 오래전부터 사람들의 지 친 몸과 마음을 뉠 수 있는 곳이었다. 비산동의 또 다른 이름은 ‘원고 개 마을’. 원고개는 달성과 금호강 사이의 넓은 들판을 지나는 ‘서울 나들길’로, 원님이 부임하거나 임기를 마치고 돌아갈 때 반드시 현재 의 비산동을 거쳐 한양으로 가야만 했다. 비산동은 원님이 먼 길을 떠날 수 있도록 잠시 쉬어가는 휴식처로 사랑받았다.
비산동은 ‘날뫼(飛山)’로도 불렸는데 여기에는 신비로운 전설 이 있다. 어느 봄날, 한 여인이 달서천에서 빨래를 하던 중 서쪽 하늘 에서 요란한 풍악소리를 들었다. 궁금한 마음에 바라보니 커다란 산이 구름처럼 날아오고 있었고, 놀란 여인이 “산이 날아온다!”라고 소 리치자 그 자리에 산이 뚝 내려앉았다는 것이다. 원님과 비산동의 인 연은 대표적인 무형문화재 ‘날뫼북춤’을 탄생시켰다. 한 원님이 마을 을 위해 열심히 일하다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마을 사람들은 깊이 슬 퍼하며 원고개에 무덤을 만들었다. 이후 제사를 지낼 때면 마을 사람 들은 원님의 외로운 혼령을 달래기 위해 북춤을 췄다. 북 12명, 쇠 1명, 장구 1명, 징 1명, 총 15명이 추는 날뫼북춤은 1984년 대구광역시 무형 문화재 제2호로 지정될 만큼 문화적 가치가 두터운 유산이다.
비산동은 대구에서 가장 먼저 천주교를 전파한 곳이기도 하다. 대구에서 세 번째로 오래된 역사를 가진 비산성당은 순교자인 이윤 일 요한 성인의 유해를 모시는 순교 방문지. 1927년 본당 승격 이후 올해 설립 92주년을 맞은 역사적인 장소다. 셀 수도 없이 오랜 시간 동안 비산동은 고유한 전설과 역사가 살아 숨 쉬는 마을로 사람들의 자부심이 되어주고 있었다.
시대의 변화는 비산동에 ‘첫 보금자리’란 또 하나의 이름을 더한다. 산업화가 시작하면서 돈을 벌고자 하는 젊은이들이 모이는 마을이 된 것이다. 섬유산업이 우리나라의 경제를 이끌어가던 1980년대, 비 산동은 서대구산업단지에 노동력을 공급하던 활기찬 주거지로 각광 을 받았다. 젊은 일꾼들은 제3공단, 염색산업단지 등 언제나 일손이 필요했던 곳으로 모여들었다. 이들에게 비산동은 산업단지와 가까 우면서도 대부분 주거지로 이뤄져 새 삶을 꾸리기 좋은 동네였다. 사 람들은 당시의 비산동을 이렇게 기억한다. 좁은 골목 사이에는 희망 을 꿈꾸는 사람들로 북적였고, 한 지붕 아래 여러 가족이 모여 살던 곳. 아궁이가 있는 부엌을 나눠 쓰고 마당에서 함께 설거지도 했던 사람 사는 마을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영원한 것은 없다. 호황을 누리던 섬유산업이 쇠퇴하면서 많 은 노동자들이 새 일거리를 찾아 비산동을 떠나기 시작했다. 사람들 이 떠난 자리엔 반갑지 않은 공해가 스멀스멀 자리를 잡았다. 비산동 의 서쪽에 위치한 오래된 섬유산업단지에선 악취와 대기오염이 발 생했고 북쪽의 경부선 철로에선 매일 시끄러운 소음이 들렸다. 살 곳 으로 마땅하지 않은 곳에 새로운 사람들이 찾아올 리 만무했다. 비산 동은 지난 20년간 인구가 48.1%나 감소했고, 주민생활밀착형 업종 이 최근 10년 사이에 15.2% 줄어들었다.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골목상권도 침체되자 비산동은 빠르게 공동화 현상을 맞았다. 고저 차가 30m에 달하는 지형 탓에 주민 안전을 위협하는 계단과 비탈길 이 많고, 사람이 살지 않는 폐공가가 오랫동안 방치돼 주거환경 또한 열악하다. 그런데 비산동의 분위기를 더욱 어둡게 만드는 것이 있었 다. 흉물처럼 자리한 파출소 건물이었다.
비산1동에 자리했던 원현파출소는 지난 40여 년간 비산동 전역의 치안을 담당해왔다. 1997년, 전국적으로 치안 체계가 변경되면서 마 을을 지키던 원현파출소는 문을 닫는다. 이후 스무 해가 흐르도록 원 현파출소는 누구의 손길도 닿지 않은 채 잊히고 만다. 문고리는 부서 졌고 경찰이 묵는 숙소, 무기고도 그대로 방치됐다. 동물 사체나 오 물이 지저분하게 널브러져 악취가 풍겼고, 날이 어두워지면 누군지 모를 사람들이 드나들며 공포심을 조장했다. 바로 뒤편에 어린이집 까지 있었으니 주민들의 두려움과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주 민들은 지난 20년간 원현파출소를 철거하거나 어린이 도서관 등 다 른 용도로 활용해달라고 끊임없이 요구했다. 하지만 대지가 좁고 건 물이 낡아 활용가치가 낮다는 이유로 주민들의 바람은 번번이 벽에 가로막혔다. 오래전 주민들의 안전을 책임졌던 파출소가 이제는 오 히려 주민들에게 불안감을 야기하는 공간이 된 것이다.
그러나 영원한 것이 어디 있을까. 2015년, 다시금 비산동에 활 력이 생기도록 서구청과 주민들이 팔을 걷어붙였다. 주민들이 비산 동에서 가장 필요로 한 것은 언제라도 쉽게 누릴 수 있는 문화·여가 공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골목상권이 가라앉은 탓에 비산동에는 흔한 카페 하나도 들어서지 않았다. 주민들은 손님을 맞아야 할 때면 옆 동네 카페나 버스로 20여 분 거리인 서문시장까지 나가야 했다. 비산동 주민센터 회의실은 지역 내 유일한 모임 공간이었지만, 공공 기관인 만큼 주민 입장에선 마음 편히 이용할 수 없었다. 어느 쪽이 든 주민이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이참에 원현파출소 건물을 주민 커뮤니티 공간으로 만들어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버려 진 지 20년 만에 원현파출소 건물이 비산동을 살리는 주인공으로 떠 오른 것이다.
‘오늘의 신화와 문화가 살아있는 원고개 날뫼마을’(이하 원고 개마을 재생사업)은 2015년, 국토교통부에서 주관한 도시재생공모 사업에 선정되어 2016년~2020년까지 5년간 지역활성화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예산 60억 원을 확보했다. 이듬해에는 본격적으로 원 고개마을 재생사업이 닻을 올렸다. 서구청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기획재정부가 관리하는 원현파출소를 매입하는 것이었다. 그다음에 는 오래된 파출소 건물을 리모델링한 후 주민들의 커뮤니티 공간으 로 조성한다는 계획이었다. 사실 서구청 내부에서는 리모델링이 아 닌 신축을 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원현파출소 건물 자체가 좁고 오래 됐으니 새로 짓는 것이 더 효과적이지 않겠냐는 뜻이었다. 하지만 옛 것을 허물고 새로운 건물을 세우는 것만이 도시재생사업의 전부는 아니었다. 비록 장소가 협소할지라도 과거의 유산을 최대한 활용하 고 여기에 새로운 가치를 더하는 것. 이는 원고개마을의 고유한 매력 을 살리는 최고의 방법이라는 데 모두 마음을 모았다.
‘오늘의 신화와 문화가 살아있는 원고개 날뫼마을’은 2015년, 국토교통부에서 주관한 도시재생공모 사업에 선정되어 2016년~2020년까지 5년간 지역활성화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예산 60억 원을 확보했다.
서구청은 당초에 1층을 주민 교육장 및 회의실로 조성하려 했 다. 그러나 주민의 의견을 묻지 않고 관이 일방적으로 진행하는 도시 재생사업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서구청은 비산동이 더 행복한 마을 이 되길 바라는 주민들의 오랜 바람에 귀를 기울이기로 했다. 서구청 은 사업 기획 단계부터 주민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 주민 포럼, 토론 회 등 다양한 만남의 자리를 만들었다. 2016년 8월~9월 두 달간 실 시한 주민 포럼에서 1층에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북카페’를 만들어 야 한다는 주민 요구가 가장 높게 나왔다. 도시재생사업의 주인공은 그곳에서 삶을 꾸려가는 주민들이다. 서구청은 주민들의 의견을 반 영해 당초 계획이었던 교육장·회의실 대신 북카페를 꾸미기로 결정 했다. 새롭게 변신할 공간에 ‘즐거움이 가득한 공간’이라는 ‘원고개 다락방(多樂房)’이란 이름을 붙인 것도 주민들이다. 여러 후보명 중 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것으로, 주민들이 새 공간에 바라는 바가 함축적으로 담겼다.
비산동의 새 출발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힘을 보탰다. 서구청 도시재생과는 원현파출소 부지 매입 및 리모델링 공사를 전담했고, 현장지원센터에서는 리모델링 공사 방향과 주민 커뮤니티 공간의 운영 방안 수립 등을 고민했다. 주민과 서구청을 연결하는 중간조직 인 도시재생지원센터에서는 북카페를 운영할 주민들을 대상으로 바리스타 교육을 진행하고 마을 공동체 회복을 위한 사업을 진행했다. 마을학당·마을스토리 발굴·마을동아리 운영 등 종류도 목표도 다양 한 사업이 많이 나왔다. 북카페를 포함해 원고개 다락방의 운영 주 체인 주민들은 스스로 원고개마을 주민협의체와 협동조합을 설립했 다. 마을 활성화와 지속가능한 발전을 고민하면서 동시에 일자리 및 지역소득 창출이 가능한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2015년, 대구시의 ‘커뮤니티 복합시설 시범사업’에 선정되어 5 억 원을 확보했다. 2016년 9월, 서구청은 한국자산관리공사를 통해 기획재정부 소유의 원현파출소 건물을 2억 원에 사들였다. 나머지 3 억 원으로는 2017년 1월~9월까지 리모델링 공사를 시행했다. 현장지 원센터는 낙후한 건물을 리모델링한 장소를 찾아다니며 원고개 다 락방에 도움이 될 만한 점들을 벤치마킹했다. 9개월 동안 원현파출소의 규모와 골격은 최대한 살리되 주민들의 필요와 욕구에 부응하 는 맞춤형 커뮤니티 활동공간이 점점 완성되어 갔다. 서구 도시재생 과의 김형묵 계장은 “주민들과 사업에 관한 내용을 솔직하게 말씀드 렸지만 주민들이 이 정도로 적극적이실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라며 놀라움을 표현했다.
출처 : 대구광역시 서구 도시재생과
“사업 시행 후 가장 달라진 것은 주민들이 자신감을 얻었다는 점이에요. 예전에는 ‘관이 마음대로 하겠지’라는 불신이 있었다면 이제는 아이디어도 내고 직접 행동으로 나서고 계시죠. 사업 시작 후 한 달도 안 돼서 비산동 도시재생에 동참하는 주민들이 회의실을 꽉 채울 정도였습니다.”
주민들의 의견으로 탄생하는 원고개 다락방 북카페. 서구청은 주민 들의 뜻을 살리고자 원고개마을 주민협의체와 협약을 맺어 북카페 의 운영을 위탁했다. 주민협의체는 실질적으로 북카페를 이끌어가 는 주민 바리스타들에게 운영 전권을 위임했다. 마을 사업에 적극적 으로 나서는 협의체 소속 주민들이 북카페 운영에 적극 개입한다면 이 또한 주민들을 소외시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서구청과 원 고개마을 주민협의체는 조직의 이익보다는 오로지 마을만을 생각하 는 마음으로 내린 결단이었다.
2017년 6월, 원고개 다락방 개소를 3개월 앞두고 비산동 주민 들은 생전 처음 보는 기기들 앞에 서 있었다. 생소한 기기들은 향긋 한 원두를 갈아 아메리카노, 카페라떼 등의 음료를 만드는 커피 머신 이었다. 도시재생지원센터는 북카페의 운영 주체인 주민들을 위해 ‘바리스타 양성 과정’을 마련했다. 2017년 6월부터 11월까지, 원고개 다락방 개소 이후에도 꾸준히 바리스타 기초·전문가 교육을 이수한주민들은 17명. 강사의 말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꼼꼼하게 귀 기울이 는 주민들의 열정은 커피처럼 뜨거웠다. 이 과정으로 커피에 관심이 생긴 주민들은 사비를 들여 바리스타 자격시험을 치르기도 했다.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에 힘입어 원고개마을 재생사업은 순풍에 돛 단 듯 무리 없이 흘러갔다. 서구청은 북카페에 커피 머신, 냉장고 등 설비 구입비 2,300만 원을 지원했다. 주민들은 메뉴 하나를 정할 때도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수렴했다. 다양한 음료명이 적힌 메뉴판 을 거니 대형 커피전문점이 부럽지 않았다. 이웃 간 나눔과 소통을 위해 마련된 곳인 만큼 일반 카페에 비해 저렴하면서도 질 좋은 원 두를 사용하기로 했다. 싱싱한 과일을 그대로 갈아 넣은 주스류, 달 콤한 케이크와 같은 사이드 메뉴까지, 메뉴 하나를 정할 때도 모두 논의하고 결정했다. 메뉴판이 하나씩 채워질 때마다 예비 바리스타 들의 마음도 희망으로 부풀어 올랐다. 문학, 만화, 동화 등 전 세대를 아우르는 600여 권의 도서를 구비하고 뜨개질 소품, 장신구처럼 주 민들이 직접 만든 수공예품을 한 편에 전시했다. 주민 아이디어가 더 해질수록 원고개 다락방은 카페, 전시장, 회의실 등 여러 용도로 사 용 가능한 복합 공간으로 변모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손으로 북카페를 하나하나 바꿔나가던 주민들에게 예상치 못한 난관이 발생했다. 리모델링이 거의 끝나가 고 바리스타 양성 과정 또한 한창 진행되던 때였다. 주민들은 ‘북카 페가 잘 운영될까?’라는 회의감을 느끼기 시작했고 급기야 “북카페 를 열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요?”라고 서구청에 묻는 상황에 이르렀 다. 주민들이 느끼는 두려움의 원인은 이랬다. 비산동에 앞서 도시재 생사업의 일환으로 세운 주민주도형 카페를 답사하던 주민들은 생 각보다 꾸준히 운영되는 카페가 많지 않다는 현실에 맞닥뜨렸다. 카 페 개소 초창기에 주민 바리스타가 그만두자, 일반인 바리스타를 고 용하느라 협동조합 출자금이 금세 바닥난 곳도 있었다. 비산동 주민 들이 4개월간 바리스타 교육을 받았지만 흑자로 돌아설 만큼 수익 을 낼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도 컸다.
그러나 비산동을 다시 살기 좋은 동네로 만들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은 두려움을 이겨냈다. 주민들은 주민 자율 운영 마을카페의 성 공사례로 꼽히는 곳들을 찾아갔다. 부산시 서구 닥밭골 북카페, 대 구시 동구 도시재생지원센터 카페, 대구시 남구 마실카페의 운영 실 태를 직접 눈으로 보고 성공 노하우를 배웠다. 또한 실패 사례보다 는 원고개 다락방 북카페만의 장점에 집중하기로 했다. 새로운 관점 으로 바라보자 성공의 길이 가까이에 있었다. 북카페가 들어설 부지 는 마을의 중심부이자 사람들이 자주 지나다니는 길목. 언제라도 주 민들이 모일 수 있는 곳이라는 지리적 이점에 마을 일이라면 열성 을 다하는 주민들까지 있었다. 서구청에서도 주민들을 위해 새로운 대안을 내놨다. 주민들이 초기 운영비용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도 록 2017년 9월부터 12월까지 3개월간 공간 사용료(44만 원), 재료비 (830만 원)를 지원하기로 한 것이다. 주민들의 두려움을 이해해주는 행정이 있으니 더는 무서울 것이 없었다. 아자아자! 주민 바리스타들 의 입가에 미소가 다시 쓱 스며들었다.
2017년 9월 21일, 비산동 주민들의 열렬한 환영 속에 2층 규모의 원 고개 다락방이 문을 열었다. 주민들의 우려와는 달리 시범운영 기간 3개월 동안 북카페는 빠른 속도로 안정을 찾아갔다. 현재 주민 바리 스타 12명이 순번제로 북카페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월평균 430만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새로운 일자리와 안정된 수익, 다른 동네 가 부럽지 않은 커뮤니티 공간까지 생기니 주민 바리스타들도 자신 감이 생겼다. 북카페가 큰 문제없이 운영되는 비결은 ‘소통’이다. 운 영 주체가 여러 명이 되면 갈등이 생길 수도 있지만, 비산동의 주민 바리스타들은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자세를 잊지 않는 다. 오랫동안 주부로만 살다가 바리스타가 되면서 자신감을 얻은 것 도 서로를 응원할 수 있는 힘이 됐다.
새로운 공간은 주민들의 일상을 바꿨을 뿐만 아니라 이들이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됐다. 2층 현장지원센터에서 열리는 ‘주민 주도 마을力 강화사업’ 덕분이다. 사업비 1억 1천만 원을 들여 마을 학당, 마을활동가 교육 등 주민역량강화 프로그램과 동네부엌, 마을 뮤지엄, 원고개 공작소처럼 지역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프로그램이 작은 공간에서 꾸준히 주민들을 만났다.
마을공동체 활성화 프로그램 ‘마을, 이웃을 만나다’를 향한 주 민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손맛이 뛰어난 비산동 어머님들은 주민들 이 모여 음식을 만들고 반찬도 판매하는 ‘동네부엌’ 프로그램의 히 로인들이다. 4주간 어머님들이 머리를 맞대 개발한 레시피로 비산 동 주민들은 한 달에 한 번씩 삼삼오오 모여 음식을 만든다. 송편·케 이크·수제청 등 지금까지 만든 음식들도 여럿이다. ‘마을 뮤지엄’은 원고개마을 고유의 스토리를 개발하기 위한 프로그램. ‘원고개’하면 떠오르는 대표 이야기를 발굴한 마을책 ‘원고개 마을 이야기’, 비산 동을 아름답게 채워주는 이웃 주민들의 이야기를 담은 ‘원고개 사람 이야기’를 발간했다. 술술 읽히면서도 우리네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 기가 솔직하게 녹아들어 감동을 자아낸다. 우리 집 관리 노하우와 공 구 사용법, 목가구 제작 등을 배울 수 있었던 ‘원고개 공작소’, 마을 소식지 ‘이음’ 발행, 마을 스토리북 발간까지 지난 1년간 비산동에는 매일 색다른 일이 드라마처럼 펼쳐졌다.
그러나 비산동 주민들은 마을에 모처럼 찾아온 활력이 일회 성으로 그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2017년 10월, 비산동 주민들은 마을의 발전과 소통을 위해 ‘원고개마을 협동조합’을 설립했다. 원 고개마을에 필요한 사항과 협동의 중요성 등을 공유하며 조합원들 은 세 달간 협동조합 설립에 관한 교육과 컨설팅을 받았다. 김진동 이사장을 비롯해 마을 활동에 열심인 주민들로 구성된 원고개마을 협동조합은 원고개 다락방 북카페 운영을 시작으로 다양한 사업을 실시할 계획이다. 수익의 일부를 원고개마을 발전을 위해 사용하 는 것은 물론이다. 티브로드, KBS 라디오 등 지역 언론에서도 원고 개 다락방을 주목하고 있다. 폐쇄된 파출소를 리모델링한 점은 경찰 내부에서도 벤치마킹할 만한 사례로 거론되며 견학을 요청하는 문의가 줄을 잇는다. 마을의 빈 공터를 활용해 주민들이 직접 텃밭 을 가꾸는 ‘우리 동네 꽃밭 가꾸기 사업’은 오래되고 지저분한 비 탈길이 많았던 골목에 싱그러움을 더했다.
비산동에서 30여 년을 살고 있는 구본녀 마을활동가는 마을에 이처럼 활력이 도는 지금이 놀랍기만 하다.
“주민 바리스타들이 자기 근무시간이 아니어도 카페에 늘 와 계세 요. 원고개 다락방은 차 한잔하러 오시는 분들이나 소모임을 갖는 주민들로 항상 북적이죠. 원고개마을 재생사업 덕분에 비산동이 몰 라보게 바뀌었다는 말들을 많이 하십니다.”
사업 기획 단계부터 원고개마을 재생사업이 성공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인 서구청 도시재생과 문병훈 주무관은 오 히려 “주민들에게 더 많은 것을 배웠다”라며 공을 돌렸다.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활동을 하시는 걸 보며 제 자신을 반성했어 요. 주민들은 공무원의 생각 이상으로 대단한 역량을 가진 분들입 니다. 관이 주민들을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의 열정을 사 업에 얼마만큼 녹여낼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걸 이번 사업을 통 해 알았죠.”
원고개 다락방에는 오늘도 주민들의 작지만 알찬 모임이 계속되고 있다. 소모임 중 하나인 기타 동아리는 2017년, 대구시 마을공동체 만들기 지원센터가 주관하는 주민모임사업 ‘만나자’에 공모해, 사업 보조금 100만 원을 받기도 했다. 마을 축제 개최, 야외극장, 작은 음 악회 등 마을 행사도 꾸준히 열리는 원고개 다락방. 하지만 비산동 주민들과 서구청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더 큰 그림을 그린다. 2019 년 상반기에는 지역 문화의 거점공간인 원고개 마을 뮤지엄이 건립 될 예정이다. 희망 공작소, 청년창작스튜디오를 조성하고, 주민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보행환경을 개선하려 한다.
1년 남짓한 짧은 시간에 마을의 골칫덩이였던 노후 파출소가 주민 공간으로 거듭났다. 규모는 작지만 비산동 주민들의 오랜 바 람이었던 커뮤니티 공간은 비산동의 분위기를 바꾸고 주민들에게 는 자신감을 심어줬다. ‘사람이 건축물을 만들지만 그 다음에는 건 축물이 우리를 만든다.’ 원고개마을 재생사업은 이 말을 그대로 증 명한 셈이다. 그리고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이고 싶다. ‘건축물이 우 리를 만든 곳에서 마을과 새 인생이 자라난다’라고. 우화주 마을활 동가의 변화처럼 말이다.
“지난 1년간 정말 바쁜 시간을 보냈어요. 주민들의 의지를 현실로 이룰 수 있도록 마을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마을활동가의 역할이 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마을이 변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수혜자 는 오히려 저였어요. 제가 받은 만큼 앞으로 마을에 꼭 필요한 사람 이 되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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