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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은 「도문대작」에서 “대추는 보은 것이 가장 좋은데, 크고 씨가 적으며 붉고 물기가 많아 달다”고 서술했다. 예부터 보은 지방의 토 종 대추는 귀하게 여겨졌다. 그 품질을 인정받아 조선시대에는 임 금에게 진상되기도 했다. 그리고 오늘날, 보은은 ‘대추 고을’이란 이 름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보은은 속리산을 끼고 있다. 이곳에 뿌리내린 대추나무는 맑은 공 기와 햇살 속에서 자라난다. 보은 땅은 커다란 분지 형태다. 낮은 뜨겁고 밤은 차다. 그 기복을 견디어가며 나무는 열매를 맺는다. 그렇게 영근 대추는 껍질이 얇고 당도가 높다. 보은 지방에서 생 산된 대추는 오래 전부터 품질이 좋기로 유명했다. 허균의 「도문 대작」뿐만 아니라, 「동국여지승람」, 「세종지리지」에도 언급이 됐 을 정도다. 옛날부터 ‘믿고 먹는 보은 대추’였던 셈이다.
그러나 ‘대추고을’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대추나무에게 치명 적인 빗자루병이 온 나라를 휩쓸었다. 대추나무가 일단 빗자루병 에 걸리면 열매가 열리지 않고, 대개 2~3년 안에 나무가 말라 죽 게 된다. 일부 지역에서 발생하던 빗자루병은 1950년대에부터 급 격히 전국에 번지기 시작했다. 그 여파는 80년대까지 이어졌다. 딱히 효과가 있는 약도 없었기에 농민들은 그저 나무가 말라가는 것을 지켜만 봐야 했다. 전국 대추농가 대부분이 극심한 타격을 입었다. 보은 또한 마찬가지였다. 대추고을의 농가 대부분이 대추 농사를 포기해야만 했다. 이 일로 보은의 대표 농산물은 수십 년 간 부재 상태가 되고 말았다.
보은은 2018년 현재 인구 3만 4천여 명 중 44%가 농사를 생업으 로 삼고 있다. 그러나 농업군이면서도 지역을 대표하는 소득 작 목이 없는 상황이었다. 지방재정 자립도도 전국 최하위 수준이다. 하루라도 빨리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한 소득 작목을 키워야만 했 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보은은 다시 대추에 눈길을 돌렸다. 충청 북도, 보은군, 농업기술센터와 농민이 힘을 합쳐 ‘보은대추’의 옛 명성을 되찾고자 한 것이다.
보은은 대추를 지역의 소득 작목으로 삼고 지속적으로 여러 사업 을 진행해왔다. 지난 2009년에는 신활력사업 아이템으로 대추 를 선정하기도 했다. 이러한 행보는 단순히 대추고을이란 유명세 에만 연연한 것이 아니다. 보은 또한 농촌사회의 고질적인 문제 인 인구 감소와 고령화라는 숙제를 안고 있다. 그렇기에 품이 적 게 들면서도 일정 수준의 소득을 올릴 수 있는 농산물을 찾아야 했다. 대추는 이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는 효자작목이었다. 실제 소득도 다른 작물에 비해 높다. 일반 과수의 경우 수입의 60% 정 도가 실소득인 것에 비해, 대추는 75~80% 정도다. 노동력이 적게 든다는 것도 장점 중 하나다. 게다가 이미 ‘대추고을’로 널리 알려 져 있어 브랜드 이미지도 어느 정도 확보한 셈이었다.
빗자루병이 휩쓸고 지나갔지만, 보은 지역의 대추나무 재배 농가는 점점 늘고 있는 추세다. 대추고을의 부흥을 꿈꾸며 기반 지원을 해왔던 보은의 뚝심 덕이다. 그러나 기반을 갖춘 것만으로 는 부족했다. 품질이 좋은 대추를 안정적으로 생산하기 위한 ‘기 술’의 필요성을 느꼈다. 보은 대추가 유명해진 것은 오로지 자연 의 덕택이었다. 오색황토가 분포된 토양 환경, 분지 지형으로 인 한 큰 일교차 등, 별다른 기술이 없어도 우량 대추가 자라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 있던 것이다. 하지만 주어진 환경이 아무리 좋 아도 자연 재해와 병해충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장마가 일찍 오면 생육 불량인 대추가 속출했고, 병해충으로 전체 수확량이 감 소할 때도 있었다. 대추를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재배 기술 을 도입하는 것이 시급했다.
시장 개척이 어렵다는 문제도 있었다. 대추는 강장 작용과 노 화 방지 효과가 뛰어나다. ‘대추를 보고도 안 먹으면 늙는다’는 옛 말이 있을 정도다. 혼례와 회갑상에 대추가 빠지지 않고 오르는 것도 이러한 이유다. 해독·해열 등 약리작용도 뛰어나 옛날부터 한약재로 널리 쓰였다. 여름철 보양식에도 빠지지 않는 재료가 대 추다. 그러나 대부분 말린 대추를 사용한다. 현재 국내 시장에서 구입할 수 있는 건대추는 98%가 수입산이다. 100%에 육박하는 수치를 뚫고 시장 판로를 개척하는 것은 무모한 도전에 가까웠다. 이때 보은은 묘안을 냈다. 건대추가 아닌 생대추로 승부를 보고자 한 것이다. 아직까지 우리에겐 생대추보다 건대추가 더 익숙하다. 보은은 바로 이 점에 주목했다. 소비자들에게 낯설다는 것은 아직 개척되지 않은 시장임을 의미하기도 했다. 보은은 ‘대추는 과일이 다’란 슬로건을 내걸었다. 식후 디저트 개념으로 시장에 접근하고 자 했다. 같은 양을 팔았을 때 건대추보다 생대추가 훨씬 수익이 높다는 것도 큰 이점이었다. 같은 수량이라도, 말려서 건대추로 만들면 양이 절반으로 줄어들기 때문이다. 대추를 ‘과일’로 판매 하기 위해서는 더 우수한 품질의 대추를 안정적으로 생산해야 했 다. 사람들이 생대추를 친숙하게 받아들이도록 홍보하는 일도 필 요했다. 보은은 이 모두를 해결하기 위한 사업을 새로 시작했다. ‘명품 대추생산과 연계한 가공·판매·체험단지 육성’ 사업의 시작 이었다.
보은은 먼저 군민들과 사업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자 했다. 공무원 이 교육을 받아 사업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했고, 이를 바탕으로 각 종 회의와 교육이 열릴 때마다 군민들에게 보은 대추의 우수성과 사업 필요성을 알렸다. 순회 교육을 돌기도 했다. 대추육성계를 만 들어 농가에 묘목, 지주, 관배수 및 비가림 시설을 지원하기도 했다. 대추 농사를 처음 시작하는 농민들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서다.
사업을 체계적으로 진행하기 위한 ‘대추재배전담팀’도 신설 됐다. 이는 사업의 지원 체계 확인과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것 으로 행정, 농업기술센터, 충북농업기술원이 협업하는 형태로 만 들어졌다. 행정은 대추 농사에 관련된 기반 시설을 지원하는 역 할을, 충북농업기술원은 병해충 방제와 재배 기술 연구를 하게 되 었다. 농업기술센터는 특히 중요한 사명을 맡았다. 병해충 방제와 더불어 재배 기술 연구를 하게 된 것이다. 재배 체계 및 기술을 농 민들에게 전파하는 몫도 농업기술센터가 맡았다. 최병욱 농업기 술센터소장은 처음 이 임무를 전달받고 아주 난감했다고 한다.
“당시 군수님이 농업기술센터에서 기술을 전담하라고 했죠. 수단 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기술을 알아오라고 했어요. 기술을 알고 그걸 농민들에게 알려줘야 보은 대추가 성공한다면서요. 처음에 는 막막했죠. 그때는 가지고 있는 기술이랄 것이 없었어요. 그래 서 대추 잘한다는 농가에 무작정 찾아갔죠. 어떻게 나무를 키우 나 살펴보기 위해서요. 죽기 살기로 매달렸어요.”
국내 대추나무는 모두 자생품종이다. 사과 품종의 일종인 ‘후지’는 ‘국 광’과 ‘데리셔스’를 교접하여 만들어낸 것인데, 대추는 이러한 교접종 이 없다는 것이다. 나무를 선발하여 육성하는 것이 유일한 개량 방법 이기에 그만큼 재배 기술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최병욱 소장과 농 업기술센터 직원들은 이 ‘기술’을 배우기 위해 전국의 대추 농가를 돌아다녔다. 보은 대추를 위해 피곤함도 잊고 달렸다. 때로는 설움을 겪 기도 했다. 보은을 경쟁상대로 생각하는 타지역 농가들이 있었던 것이 다. 견학차 찾아간 한 대추농가에서는 과수원에 농업기술센터 직원들 이 과수원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한 일도 있었다. 최병욱 소장은 과수 원 밖에서 대추나무를 바라보며 눈으로 ‘무엇이 다른지’를 열심히 좇 았다. 중국에도 찾아갔다. 국내 시장에서 유통되는 건대추 대부분이 중국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의 재배 기술은 대부분 우리 환경과 맞지 않았다. 전국은 물론, 해외까지 견학을 갔지만 이렇다 할 수확은 얻지 못한 것이다. 마침내 농업기술센터는 ‘우리가 직접 해보자’는 결 심을 내렸다. 곧장 대추나무를 심어 ‘대추실증시험포’를 만들었다. 그 리고 실증시험포에서 여러 실험을 반복했다. 중국에서 배운 기술도 적 용해보고, 여러 농가의 노하우도 접목시켰다. 그러면서 하나씩 보은 대추에 대한 새로운 정보들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대추는 기상에 민감해요. 비료와 농약을 줄 때도 정확한 시기를 지켜야 해요. 그 때를 놓치면 빗자루병이 오죠. 대추는 장마가 오기 전에 착과가 끝나는데, 착과기 때 비가 오면 결과가 좋지 않아요. 그래서 실증포에서는 하우스 재배를 해요. 비도 막아주고, 날씨가 더울 때는 차광 효과도 있죠. 열과가 많이 생기면 생대추로 판매하 질 못 해요. 그렇기 때문에 햇빛을 차단하는 것도 중요하죠.”
최병욱 소장과 우종택 팀장, 권영준 주무관 등 농업기술센터직원들은 이렇게 몸으로 부딪혀가며 알게 된 사실을 하나하나 실증시험포에 다 시 적용했다. 시행착오를 되풀이했지만 무엇보다 소중한 과정이었다. 보은 땅에서 실험을 진행하니, 좋은 결과를 얻게 되었다. 자연스레 보 은의 기후와 환경에 최적화된 것이었다. 기존 노지에서 재배하던 대추 를 하우스 안으로 옮겼고, 하우스 내에 자동온도조절이 되는 환풍기도 달았다. 무인방재시설과 관배수시설도 갖췄다. 시설뿐만이 아니다. 실 증시험포의 대추나무들은 관을 통해 물을 주는데, 물 속에 비료를 넣 어 공급한다고 한다. 이 비료 또한 분석을 통해 영양 성분과 비율을 알맞게 조정한 것이다. 어떤 시기에 어떤 양분을 주어야 대추의 품질이 최고로 좋아진다는 것까지 파악했다고 한다. 직접 대추 농사를 지으며 기술을 체득하다 보니, 대추 농사 재배 체계가 저절로 갖추어졌다.
2017년에는 보은 내 대추농가 22곳에 재정 지원이 이루어졌다. 대추실증시험포의 운영 결과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지만, 농민 모두 가 호의적으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실증사업이나 다름없었기에 실패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단순한 재정 지원만 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농업기술센터의 지도 아래 대추를 생산 해야 했다. 개개인마다 자신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농민들에겐 쉽 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보은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이번 사업에 호의적이며 열의가 강한 22곳의 농가를 선정해 우선 지원했 다. 시간이 지나자 주변 농가들의 반응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농업기 술센터에서 정립한 기술이 점차 신뢰를 얻기 시작한 것이다. 직접 실 증시험포를 살펴보고 자비로 시설을 보완하는 농가가 생겨날 정도 다. 현재 실증시험포는 보은 대추를 연구하는 연구소로 농민들에게 기술을 전파하는 교육장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좋은 품질의 농작물을 생산하는 것은 농업에서 중요하다. 그 러나 보은의 이번 사업에서는 특히 필요한 일이었다. 맛있는 대추 를 소비자들의 식탁까지 가져가는 것. 그것이 대추를 ‘과일’로 탈 바꿈하기 위한 첫 걸음이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세워진 실증시 험포는 그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실증시험포는 일종의 선구적 모델이 되었다. 보은 대추가 나아갈 길을 현장에서 직접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구분 | 대추과자 | 대추즙 | 생대추 | 건대추 | 유통방법 |
---|---|---|---|---|---|
규격 | 20g | 100㎖(30봉) | 28㎜(kg) | 28㎜(kg) | 직거래 |
단가 | 1,000원 | 30,000원 | 18,000원 | 18,000원 | |
수량 | 15,000봉 | 50박스 | 22톤 | 12톤 |
출처: 보은군 농업기술센터
보은 농업기술센터는 직접 대추실증시험포를 운영하며, 대추에 대 한 여러 기술과 노하우를 쌓아갔다. 다음 과제는 기술을 농민들에 게 전파하는 것이었다. 보은은 축적된 재배 기술을 바탕으로 교재 와 병해충 생리도감을 발간하여 농민들에게 보급했다. 그러나 자 료 배포로 기술을 전파하기는 부족하였다. 이를 보충하기 위해 농 민들에게 직접 대추 기술을 알려주기 위한 과정을 신설했다. 바로 ‘대추대학’이다. 대추대학은 말 그대로 ‘어떻게 하면 대추 농사를 더 잘할 수 있을까’에 대해 배우는 과정이다. 농업기술센터 내 대 추실증시험포를 상시 교육장으로 활용하며, 때로는 농가를 찾아가 수업을 진행하기도 한다. 현장에서 직접 생생한 교육을 받을 수 있 는 것이다. 군민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새로 교육 과정을 시작할 때 는 신청자가 모여들어 교육 대상자를 선정해야 할 정도다. 대추대 학은 한 기수에 40명 정도로, 교육은 20번 이상 진행되었다. 총 이 수시간은 100시간 정도다. 현재 대추대학은 12기까지 진행되었으 며 총 498명이 교육 과정을 수료했다. 이들은 농업기술센터 직원 못지않은 대추 전문가가 되었다. 졸업생들끼리 총 동문회를 열어 대추에 관한 정보를 주고받는 등 교류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대추대학 과정을 이수한 뒤, 마음이 맞는 이들끼리 ‘코리아보은대추협동조합’을 만들기도 했다. 해외에 보은 대추를 홍보하고 수출 판로를 개척하는 것이 목적이다. 2017년 출범한 ‘코리아보은 대추협동조합’은 아직 영세하다. 사무실도 없어 산림조합 사무실 을 빌려 쓰는 형편이다. 작년에는 대추과자, 건대추 등을 일본에 판 매해 3,200만 원의 수출 소득을 올렸다. 적은 금액이지만 수출 성 과를 거두었다는 소중한 의미를 부여했다. 종전에는 수출을 하고 싶어도 여건이 되지 않아 생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다 이번 사업과 맞물려 본격적으로 해외 시장에 도전장을 낼 수 있게 되었 다고 한다. ‘코리아보은대추협동조합’ 관계자들은 어려운 상황 속 에서도 수출 성과를 일궈낸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한편으 로는 제대로 판매를 하지 못했다며 아쉬워하기도 했다. 기상 악화 로 인해 작년 대추 물량이 부족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코리아보은대추협동조합은 일본 다카키오 물산과 협약을 맺으며 수출길을 텄다. 향후에도 이들은 일본에 꾸준히 수출량을 늘려갈 계획을 세우고 있다. 대만과 호주도 직접 찾아가는 등 해외 시장도 활발히 개척 중이다. 보은 또한 적극적으로 이들을 지원하고 있다. 농업기술센터의 도움으로 제품 패키지도 일본어, 중국어, 영어 등 으로 교체할 수 있었다. 협동조합 관계자들은 “사소한 일일지 모르 지만 이런 것들이 수출에 큰 도움이 된다”고 전했다. 농민들이 미 처 신경 쓰지 못하는 부분을 행정에서 보완하고 있는 것이다.
구분 | 규격 | 단가 | 수량 | 판매액 | 업체명 |
---|---|---|---|---|---|
대추과자 | (40g) | 2,000원 | 4,800 | 10,000천원 | 일본: 다카키오 물산 |
건대추/생대추 | (24㎜,kg) | 6,000원 | 3,600 | 22,000천원 |
출처: 보은군 농업기술센터
보은은 대추 소비 증대 및 판로 개척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대추 가공 식품 개발이다. 대추를 재 료로 여러 제품을 개발하여 시장 경쟁력을 갖추고자 한 것이다. 연구 끝에 대추과자, 대추찐빵, 대추한과, 대추잼, 대추즙, 대추약 술, 대추식초 등 다양한 제품이 탄생했다. 그중에서도 대추과자 (대추칩)는 인기가 높은 제품이다. 대추과자는 씨를 뺀 대추를 잘 라 냉동 건조한 것으로, 대추 본연의 달콤함과 향을 살리기 위해 일체의 감미료 및 방부제, 색소를 첨가하지 않고 수분을 최소화한 것이 특징이다. 아삭아삭한 식감으로 건대추와는 또 다른 맛이 느 껴진다. 이 사업을 진행하기 전에도 대추과자를 생산하긴 했지만, 그 과정이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대추 하나하나를 손으로 집어 일일이 씨를 빼야 했기 때문이다. 고령화된 농가에서는 버거운 일 이었다. 이에 보은은 농촌진흥청에서 개발한 대추씨분리기와 대 추세절기, 정량기, 금속탐지기, 실링기 등 대추과자 생산 설비를 농가에 지원했다. 이로 인해 대추과자를 만드는 데에 드는 노동력 은 대폭 감소하고, 더욱 품질 높은 대추 가공 식품을 만들 수 있게 됐다.
좋은 품질의 대추를 생산하고 대추과자 등 다양한 대추가공 식품까지 갖췄으니, 다음은 판로를 모색할 차례였다. 이때, 보은군 청의 직원들이 나섰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등산로, 아파트, 마트 등을 찾아 각종 시식회와 판매 행사를 진행했다. 보은의 ‘대추축 제’와 연계한 점도 눈에 띈다. 대추축제는 작은 마을에서 3일간 열 리던 소박한 축제였다. 그러던 것을 2011년부터 보은읍으로 옮겨 10일간 개최하면서 단숨에 보은을 대표하는 축제가 되었다. 축제 기간 동안 개최 장소인 보청천 주변에는 370여 개의 천막이 쳐진 다. 농민들은 80여 종의 보은농특산물을 직접 판매한다. 보청천에 는 여러 모양의 조형물을 띄우고, 양편 제방에는 2만 포기의 국화 가 만발한다. 대추축제는 볼거리, 즐길거리, 먹을거리가 다양한 축제로 해가 갈수록 규모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에는 10일간 90만 명이 대추축제를 즐겼으며, 총 판매 수익은 93억 원을 기록했다. ‘2017 충청북도 농특산물 판매축제 평가’에서 최우수축제로 본상 을 수상하기도 했다.
10일간 90만 명이 대추축제를 즐겼으며, 총 판매 수익은 93억 원을 기록했다. ‘2017 충청북도 농특산물 판매축제 평가’에서 최우수축제로 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대규모 인파가 모이는 축제인 만큼, 대추를 홍보하고 판매하 기에 절호의 기회였다. 보은은 축제 기간 중 보은대추에 대한 대 대적인 홍보와 판매 활동을 활발히 펼쳤다. 또한 10개 농가를 체 험농가로 선정해 하우스, 비가림 시설 등 편의시설을 갖춰 대추 수확 체험 행사를 진행했다. 축제객들이 농장을 직접 방문해 대추 를 수확해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대추축제와 체험 농장을 연계 한 대추 수확 체험 행사는 성공적이었다. 지난해에만 3,800명의 체험객들이 농장을 방문했다. 이와 더불어 농가들은 보은대추가 소비자들에게 더욱 친근하게 다가설 수 있도록 새로운 사업을 시 작했다. 몇몇 농가들의 대추나무를 1주는 12만 원, 2주 이상은 1주 당 10만 원의 가격으로 분양받을 수 있다. 분양받은 나무에는 분 양한 사람의 이름표가 걸린다. 나무 관리는 전적으로 농장주가 하 고, 수확기에 약 2번 정도 방문 수확이 가능하다. 오지 못할 경우 에는 농장주가 수확한 뒤 택배로 대추를 보내준다. 주당 수확량 은 7kg으로, 수확된 양이 7kg보다 미만일 경우 부족한 분만큼 생 대추로 채워준다. 사전에 연락만 하면 자신의 대추나무를 보러 언 제든 찾아갈 수 있다. 이렇게 대추나무를 분양받은 사람들은 수확 기에 대부분 가족과 지인을 대동하여 농장을 찾는데, 나중에는 그 지인 또한 대추나무를 분양받거나 대추를 구입해간다고 한다. 고 정 고객이 점점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향후에도 보은은 대추축제와 체험 농가를 연계하여 고정 고 객을 확보해나갈 방침이다. 올해도 10월 13일부터 22일까지 ‘5천 만 국민이 함께하는 맛의 감동’을 주제로 대추축제가 열린다. 대 추 수확 체험 행사를 진행하는 한편, 대추 홍보 행사와 더불어 각 종 판매 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보은은 꾸준히 대추를 키워왔다. 허나 쉽지 않은 일이었다. 빗자루 병으로 대추나무들이 말라 죽기도 했고, 중국산 건대추에 국내 시 장을 빼앗기기도 했다.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보은은 ‘대추는 과일이다’란 슬로건을 내세웠다. 아삭하고 달콤한 생대추의 매력 을 사람들이 알아주었으면 했다. 건대추보다 품질 관리가 배로 까 다로운 것이 생대추였기에 보은은 ‘대추’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했 다. 이미 알만한 것은 다 알고 있다고 여겼던 것이 대추였다. 그러 나 대추의 고장 보은에서 정작 대추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것 을 깨달았다. 보은은 초심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대추를 처음 키우 는 자세로 연구하고 학습했다. 하우스를 개량하고, 물 주는 방법을 바꿔보고, 비료의 배합을 연구하며 차츰 대추에 대해 알아가기 시 작했다. 그러면서 좋은 대추를 생산하기 위한 농사의 큰 틀을 잡 아갔다. 농민들에게도 이 틀을 적극적으로 전수하고자 했다. 교재와 도감을 발간했고, 대추대학을 운영하며 기술을 전파했다. 대추 대학을 졸업한 이들은 대추에 관해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전문가가 되었다. 남은 것은 판매였다. 대추를 재료로 하여 다양한 가공식품을 개발했고, 군내 공무원들은 직접 발로 뛰며 보은 대추 를 홍보했다. 농가들은 체험 농장을 운영하며 직접 보은대추의 고 객층을 넓혀나갔다. 이러한 노력이 빛을 발한 것일까. 보은 대추는 2017 코리아 TOP 브랜드 시상식에서 특산품 브랜드 부문 대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보은의 대추 재배 면적은 730ha로 크게 늘어났 으며, 대추로 인한 소득도 300억 원으로 증가했다. 적게나마 수출 에서도 성과를 이루었다. 그러나 가장 큰 소득은 따로 있다. ‘대추 를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군민들의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이 공감대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새로운 판매 전략도 짜야 하고, 체험을 통한 직거래 구매 고객층도 확보해 야 한다. 대추과자, 건대추 등 가공 식품에 대한 수출 판로도 모색 해야 한다. 농업기술센터의 실증시험포도 더욱 바빠질 예정이다. 새로운 목표를 세웠기 때문이다. 좋은 대추를 생산할 수 있는 기술 체계를 잡아놓았으니, 이제는 불량 환경에도 대추를 안전하게 착 과시킬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다음 과제라고 한다.
대추고을의 명성은 하루아침에 쌓인 것이 아니다. 아주 먼 옛 날부터 차곡차곡 축적된 결과물이다. 이는 천혜의 자연환경 덕분 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마냥 자연에만 의지할 수 없게 되었다. 생 대추가 설 자리는 더욱 좁았다. ‘대추’하면 사람들은 건대추만 떠 올렸기 때문이다. 보은은 대추가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까 웠다. 대추가 가진 맛이나 식감이 여느 과일에 뒤처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더욱 그러했다. 이들은 대추를 ‘과일’로 만 들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그리고 대추가 가진 무한한 가능성을 세상에 알리고 있다. 괜히 ‘대추고을’이 아니란 것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날씨의 기복을 견디며 열매를 맺는 대추처럼, 보은은 오늘도 ‘대추고을’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다. 보은이 이 땅 을 넘어 세계의 ‘대추고을’이 되는 그날을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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