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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나라도 도서관이 없는 지역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도서관이 늘어난 만큼 책 읽는 도서관, 공부하는 도서관의 분위기에서 벗어나 도서관에 새로운 특성을 부여하려는 지자체들의 노력이 활발하다. 의정부에도 미술전문공공도서관이 건립되어 2019년 말에 개관 예정이다. 특성있는 공공도서관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의정부의 공공도서관 건립 이야기를 들어보자.
우유수레를 끌던 개 파트라슈와 함께 살던 소년 네로를 모르는 이는 드물 것이다. 어릴 적 많은 이들이 만화영화나 동화 속에서 소년 네로를 만났을 테다. 네로가 화가를 꿈꾸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이 역시 많을지 모르겠다. 네로는 마을의 대성당에 있는 화가 루벤스의 그림을 직접 보고 싶어 했다. 가난한 소년 앞에서 그림을 가린 커튼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고, 죽기 직전에야 네로는 루벤스의 그림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네로의 이야기를 단지 19세기 유럽에서나 있을법한 슬픈 사연으로 치부할 수 있을까? 21세기 현재 대한민국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네로와 달리 공공영역에서 충분한 문화예술교육서비스를 향유하고 있을까? 답은 아쉽게도 그렇지 못하다는 쪽으로 기운다. 우리나라 공공교육서비스는 점차 확대되고 있지만, 아직 문화예술 분야까지 공공영역에서 책임지고 있지는 못한 실정이다. 문화예술 분야의 교육이 더 많은 경제적 지원을 필요로 한다는 점 때문에, 경제 격차는 곧바로 문화예술 교육의 격차로 옮겨갈 수 있다. 의정부에서 진행하고 있는 미술전문공공도서관 건립 프로젝트 역시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도서관이 단지 책 읽는 공간, 공부하는 공간에 머물러서는 안된다는 의식이 도서관을 운영하는 주체인 사서들 사이에서 싹텄다. 미술과 음악 등을 테마로 하는 공공도서관이 기획되기 시작했다.
의정부시 도서관정책과에서 도서관개관준비T/F팀을 이끌고 있는 박영애 팀장은 의정부 전체의 도서관 계획을 책임지고 있다. 2019년 11월 중 개관 예정인 의정부시 민락동의 미술전문공공도서관도 기획단계부터 박영애 팀장의 손을 거쳤다. 박영애 팀장은 23년간 사서로 근무해왔다. 그렇다고 도서관에 대한 경험을 그 23년에 한정하지는 않는다.
“23년 전 사서 일을 시작했지만, 그전에는 저도 도서관 이용자였죠. 벌써 40년이 넘게 도서관을 이용하는 이용자이기도 해요. 도서관은 공부하는 곳인 줄로만 알았는데, 2000년대 들어 도서관이 변하기 시작했어요. 도서관 안에 인터넷 공간도 생기고요. 그러다가 해외 도서관투어를 다니면서, 도서관이라는 공간의 경험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공부방처럼 이용자들을 가둬두고 학습시키는 공간에 서는 사서들도 답답함을 느끼거든요.”
박영애 팀장이 도서관이라는 공간을 바라보는 방식에는 이용자와 운영자의 관점이 모두 들어있다. 운영자의 관점은 자연스럽게 이용자로서 도서관을 접했던 경험과 연결된다. 문헌정보학 박사학위를 가진 박영애 팀장은 대학원 시절부터 해외 도서관들을 틈나는 대로 탐방하기 시작했다. 경기도 북부 지역의 도서관 사서들과 함께 해외 도서관투어에 나서기도 했다. 다른 나라의 도서관들이 궁금해 개인 시간과 비용을 들여 배낭여행처럼 다녀온 투어였다.
특히 박영애 팀장의 기억에 남는 곳은 싱가포르였다. 싱가포르에서 도서관이 새로운 경험으로 다가올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싱가포르의 공공도서관은 열린 공간 안에서 무질서 속의 질서를 보여 주었다. 이용자들이 자유롭게 그 열린 공간을 만끽하면서 돌아 다니는 모습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고, 우리나라의 도서관과 굉장히 다르게 느껴졌다고 한다
2007년 의정부로 오게 되면서 박영애 팀장이 과학도서관과 어린이도서관의 개관 준비를 담당하게 되었다. 그동안 해외 도서관투어를 통해 접했던 경험으로 의정부의 도서관을 변화시킬 기회였다. 무엇보다 기존의 열람실이 문제였다. 도서관의 열람실은 그동안 이용자를 가둬두고 학습시키는 역할을 해왔다. 박영애 팀장은 다른 가치를 창출하는 공간으로 열람실을 변모시키고자 동료 사서는 물론 상급자에게 선진 도서관 경험을 도서관에서 먼저 제공해야한다는 논리로 설득했다. 그렇게 열람실이 열린 공간인 통합자료열람실로 변화하였다.
도서관 내부 공간의 변화는 누구보다 사서들이 원하는 일이기도 했다. 어떤 이용자들보다 도서관 안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이들은 바로 사서가 아니던가. 박영애 팀장을 비롯한 의정부의 도서관 사서들은 도서관 내부에서 공간의 혁신이 필요하다는 데에 합의했다. 이후 의정부시는 공공도서관의 건립방향을 도서관의 역할 변화에 두고 있다. 도서관을 지식 습득과 학습의 공간을 넘어 시민의 삶을 변화시키는 제3의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색다른 시도들이 의정부시에서 지속되고 있다.
박영애 팀장이 의정부에 온 2007년부터 의정부 민락동 지역에 공공도서관 건립이 추진되기 시작했다. 민락동은 과거 미군 주둔 지역으로 도서관이 전혀 없는 지역이었다. 미군부대가 이전하고 새로 주택지구가 형성되면서 민락동의 공공도서관 필요성은 점점 더 증가하고 있었다. 2018년까지 민락동에 새로 유입된 인구는 약 6만명에 달하고 있다.
민락동에 공공도서관이 필요하다는 점을 충분히 인지한 의정부시에서 약 150억의 예산을 확보하여 도서관 건립을 추진하였음에도 건립과정은 순조롭지 않았다. 도서관 건립은 건축 분야의 공무원들이 담당하게 되는데, 담당 인력들이 자주 교체되었다. 건축 분야 전문가라 하더라도 도서관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않으면 업무추진이 원활하지 않았다.
결국 박영애 팀장은 직접 도서관 건립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건립을 추진하면서, 민락동 지역이 문화소외 지역이라는 점을 감안했다. 민락동은 도서관뿐만 아니라 미술관 등 문화예술 공간이 전무했다. 이왕 도서관 건립을 추진하는 김에 일반도서관이 아닌 복합문화공간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지역의 시민들을 대상으로 건립될 도서관의 특성에 대한 설문조사도 병행했다. 조사 결과 시민들도 일반도서관보다는 문화예술분야의 복합문화공간을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복합문화공간을 기획하고 보니, 의정부에 백영수 화백이 거주하고 계셨다. 백영수 화백은 1947년 창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추상미술그룹 신사실파의 일원이었다. 신사실파에는 백영수 화백을 포함하여 김환기, 이중섭, 유영국, 이규상, 장욱진 화백이 속해 있다. 당시에는 백영수 화백이 신사실파 일원 중 유일하게 생존해 계셨다. 백영수 화백의 작업을 의정부시 차원에서 새로이 조명 의정부미술도서관 하고 보존해야 할 필요가 충분해 보였다. 안타깝게도 백영수 화백은, 도서관 건립공사가 시작되고 얼마 후인 2018년 6월에 세상을 떠났다.
백영수 화백의 작업을 조명하고 보존하기 위해 새로 건립될 도서관은 미술관의 기능을 겸하도록 기획되었다. 의정부에서 ‘미술전문공공도서관’의 개관을 위한 준비가 이제 막 시작된 것이다. 도서관이 미술관의 기능을 겸하기 위해서는 일반도서관과 공간부터 달라야 했다. 미술품을 전시할 전시실이 필요했고, 작품을 보관할 수장고도 필요했다. 당연히 설계단계부터 이런 점들이 반영 되어야 했다.
2015년 도서관의 설계 공모가 시작되었다. 2016년에는 공모에서 선정된 설계를 바탕으로 실시설계가 시작되었다. 안타깝게도 실시설계 팀의 도서관 이해도는 높지 않았다. 미술도서관에 걸맞은 디자인의 독창성이 실시설계를 통해 많이 훼손될 뻔 했다. 공사할 때 난이도가 높을 것이라 예상되는 부분들이 공사의 편의성 때문에 대폭 수정된 것이다. 비정형으로 설계된 부분은 수직으로 수정되었고, 천창도 사라질 뻔 했다. 설계공모 원안을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어 건축사무소와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협의한 끝에야 변경된 내용을 복원하고 원래 설계대로 공사를 진행 할 수 있었다.
경기도 기술심의와 BF(장애물 없는 생활환경, Barrier Free) 인증 등으로 설계기간은 점점 연장되었다. 실시설계가 끝난 뒤 상승된 건축비 부분 등에 대한 변경을 승인하고 나서 2017년 8월에야 실시설계 도면이 최종 확정되었다. 실시설계가 완료되고 나서 건축공사가 발주되기까지 걸린 기간은 총 635일이었다.
무엇 하나 쉽게 넘어가는 일이 없었던 만큼 배운 것도 많았다. 기획부터 도서관 건립의 모든 과정에 참여했으므로, 도서관의 내부공간뿐 아니라 건축 자체에 대한 관심도 가지게 되었다. 박영애 팀장은 현재 대학원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있다. 도서관의 의미를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건축에 대한 관심이 도서관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으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의정부미술도서관은 2019년 1월에 도서관개관준비T/F팀을 구성하여 11월 중 개관을 목표로 개관 준비 작업을 하고 있다. 설계단계부터 미술도서관의 정체성이 잘 드러날 수 있도록 건립하였으므로 일반도서관과 다른 점들이 여러 군데 눈에 띈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전체 공간이 오픈 플랜으로 설계되어 중앙의 원형계단을 통해 1층, 2층, 3층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각 층의 이용 계획도 일반도서관과는 다르다. 일반도서관은 보통 책을 보관하는 자료실과 공부를 할 수 있는 열람실로 구분된다. 의정부미술도서관의 지상 3개 층은 미술도서관이라는 전문성을 최대한 살리면서, 일반적인 도서관의 기능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계획되었다. 단순히 미술로 특화된 도서관이 아니라, 미술관의 기능까지 겸하는 도서관이다.
의정부미술도서관의 1층은 미술컬렉션, 전시실, 커뮤니티공간으로 구성되어있다. 자료 열람은 물론이고, 한쪽에서는 그룹미팅이 가능하고, 또 한쪽에는 오픈스테이지도 있다. 2층은 공공도서관의 역할에 충실하게 구성된다. 3층에서는 열람과 체험, 창작, 교육, 강연, 커뮤니티활동 등이 이루어질 예정이다. 가변적인 공간 레이아웃을 적용하여 공간의 효율성을 높일 계획이다.
단지 미술관 흉내를 내는 공간에 머물지 않기 위해 각지의 미술계 전문가들에게 자문도 구했다. 예상보다 미술계의 반응이 좋았고, 많은 도움과 협력을 약속받기도 했다. 미술관보다는 미술도서관이 장기적으로 볼 때 훨씬 전망이 나을거라는 평가도 들었다. 발길이 쉽게 닿지 않아 진입장벽이 높은 미술관에 비해, 아무래도 도서관은 접근이 쉬운 탓이다. 도서관의 공공성이 문화예술 분야로까지 확장될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순간들이었다.
의정부미술도서관은 미술이라는 전문 분야에 대한 공공성 실현의 지속성을 담보하기 위하여 신사실파와 관련된 재단과 미술관은 물론 경기도미술관, 김달진미술연구소, 대전시립미술관 등과 상호협력MOU체결을 통해 의정부미술도서관의 버팀목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또한 지리적·지역적 특성이 반영된 의정부미술도서관만의 정체성과 역할을 찾아 장기적인 운영계획을 수립하였고, 전시 기획 큐레이터와 에듀케이터를 채용하여 미술 전문 공공도서관으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나가기 위한 준비를 철저히 하고 있다.
출처 : 의정부시 도서관정책과
도서관이기도 하고 미술관이기도한 이 공간을 기획하고 운영을 준비하는 박영애 팀장에게 지난 몇 년 간은 어떤 시간이었을까? 어려운 일들이야 한두 가지가 아니었겠지만, 박영애 팀장은 과거보다 앞으로의 이야기들을 꺼내놓기 바쁘다. 의정부미술도서관을 개관한 후 잘 안정시키고 정착시키는 일이 남은 공직생활의 목표라고 말하는 박영애 팀장. 그러면서도 지난 몇 년 간 쌓인 노하우들을 다른 사서들과 나누느라 분주하다.
지자체에서 도서관을 건립할 때는 보통 구체적 계획 없이 예산부터 확보해놓는 경우가 많다. 예산도 중요하지만, 실무를 진행할 사람을 찾는 일도 쉽지 않다. 박영애 팀장은 각 지역의 사정과 특색을 잘 아는 사서들이 도서관 계획에 참여해야 좋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2019년 3월 도서관 건축에 관한 전국 규모의 세미나에 참가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세미나의 주제는 ‘4차 산업혁명시대에 도서관 이용자 공간의 변화를 모색하다’였다. 한국도서관협회, 사단법인 한국문화공 간건축학회, 한국공간디자인 단체총연합회가 공동으로 주최했다. ‘도서관, 건축에 길을 묻다’라는 제목으로 경기도도서관총서를 공동으로 발간하기도 했던 박영애 팀장도 이 세미나에서 도서관 건립과 리모델링에 관한 주제로 발표를 했다.
박영애 팀장은 사서들이 도서관 계획에 참여해야 할 뿐만 아니라 건축 공부도 했으면 하고 바란다. 꽉 막혀 있어 사고 확장이 불가능해 보이는 공간의 문제를 가장 크게 느끼는 사람들이 바로 사서이다. ‘공간이 도서관을 바꾼다’고 확신하는 박영애 팀장에게 건축은 공간의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열쇠이다. 현장에서 사서들 자신이 느끼는 문제와 이용자들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사서들이 도서관 건축에 관여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도서관 건축이 건물을 크게 신축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박영애 팀장은 의정부 전체의 도서관 계획을 이야기하면서 접근성이 좋은 동네 작은 도서관의 역할을 강조한다. 현재 의정부의 각 동 주민센터에는 작은 도서관이 있는데, 규모는 작지만 자료가 완전히 통합된 상호대차서비스를 통해 약 70만권의 장서를 자유롭게 만날 수 있다. 이런 작은 도서관이 의정부미술도서관과 같은 특성화도서관의 기반이 된다.
의정부미술도서관은 시립미술관이 없는 의정부의 지역특성을 감안해 미술관의 특성까지 겸하는 도서관으로 이용될 예정이다. 현재 의정부시는 발곡 지역에 음악도서관을 준비 중이다. 미술도서관을 준비하면서 축적된 노하우들이 음악도서관을 준비할 때 이용되어 시행착오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노하우는 가재울도서관에도 역시 적용되었다.
가재울도서관은 공간의 효율성과 복지기능을 극대화한 중소 규모의 도서관으로, 유휴공간을 활용하여 만들어졌다. 이용가치가 적은 철로 하부공간을 활용한 전국 최초 사례이다. 지역의 특성을 감안하지 않고 무조건 새로 건물을 건립하기보다는, 유휴공간을 활용하고 실제로 이용자들의 공동체 문화공간이 확충될 수 있도록 배려했다. 건물의 외양보다는 내부공간의 이용이 중요하다는 노하우가 반영된 결과이다.
동네의 작은 도서관과 여러 특성화도서관들을 통해 의정부시 전체에서 도서관의 기능이 교차되고 확장될 수 있다. 이런 교차와 확장을 통해 이용자들의 도서관 경험이 다양해진다. 어디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도서관,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도서관. 모두의 정부에 가면 만날 수 있다. 도서관 안에서 공간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키려 노력한 사서들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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