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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래’사람들이 만드는 최고의 ‘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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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의 역사적 콘텐츠를 발굴하여 애향심을 도모하고 경제를 활성화 장기적 리더양성 프로그램 운영 지역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의 장을 마련
    • dongnae 부산광역시 동래구
      • 소관부처국토교통부
      • 포괄보조사업명도시활력증진지역개발
      • 내역사업중심시가지재생
      내역사업 우수사례
      ‘동래’사람들이 만드는 최고의 ‘동네’
      벤치마킹 포인트
      • 지역의 역사적 콘텐츠를 발굴하여 애향심을 도모하고 경제를 활성화
      • 장기적 리더양성 프로그램 운영
      • 지역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의 장을 마련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지명에는 그 지 역의 독특한 역사나 뿌리가 숨겨져 있는 경우가 많다. ‘동래’ 또한 신라 757년 ‘동래군’으로 명명된 이래 천 년이 넘게 쓰이고 있는 오래된 이름이다. 「동래방래사업」이란 사업명칭은 처음 듣는 사람 에겐 다소 독특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동래 출 신 위인 장영실이 들었다면 아마도 무릎을 탁 쳤 을지도 모른다. 지명을 전면에 내걸고 있는 만큼 지역 발전에 대한 주민들의 염원이 깊이 녹아들어 있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동래. 동녘 東에 올 萊자 를 쓴다. ‘돌아오다’라는 뜻을 이름 안에 품고 있 기 때문일까? 동래는 지금 전성기로 귀환 중이다.

      잠들어 있던 주민 주체성을 깨우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지역이 남긴 다양한 역사적 문화재들은 오늘날 동래의 자부심이다. 마안 산 일대를 중심으로 분포되어 있는 동래읍성과 동래 향교, 조선시대 관아 건물인 동래부동헌과 복천고분 군 등의 문화재를 지나 조선시대 때 형성된 전통가로 가 남아있는 주거지역을 걷다보면, 부산의 평범한 동 네로만 보이던 동래가 그만의 독특한 역사와 향기를 품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지역의 역사는 오랫동안 주민들의 관심에서 비 껴나 있었다. 특히 동래 온천의 번영으로 지역이 활기 를 누리던 1980년대의 주민들은 굳이 역사를 통해 지 역의 자긍심을 고취시킬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 나 온천사업이 쇠락하고 지역의 상권이 무너지기 시작 하자 동래에도 오랜 침체기가 찾아오게 되었다. 사람 들이 빠져나가자 상점은 문을 닫았고 시설은 낙후되 었다. 가장 큰 문제는 주민들이 지역에 대한 자신감과 믿음 그리고 의욕을 잃어가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명물 1번가 내 한국 조폐공사 옛터 상징 조형물

      「동래방래사업」이 역사에 주목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 다. 이 사업은 지역 재생에 대한 주민 의식교육이 필 요하다는 강력한 믿음 하에 출발했다. 동래구는 번영 의 씨앗을 온천보다는 지역의 역사에서 발견하고자 했다. 사업의 이름 앞에 붙는 ‘고(古)도심 재창조’라는 부연설명은 「동래방래사업」의 정체성을 가장 명확하 게 드러내준다. 지금까지 부산의 도시 재생사업은 주 로 부산의 역사를 개항 전과 후로 나누어 진행해왔다. 그러나 동래구는 부산이 ‘동래’로 불리던 시절, 조선시대까지 거슬러 오르고자했다. 역사를 기반으로 한 장소재생을 통해 동래구만의 가 치를 재발견하고 이를 사업의 원동력으로 삼자는 취지에서였다. 그렇게 「동래방래 사업」은 동래 주민들의 퇴색된 자긍심을 되찾고 주체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2013년 ‘도시활력증진지역개발사업’에 선정된 이후, 「동래방래사업」사업은 4년간 9,694백만 원의 사업비로 운영된다. 특화거리를 조성하고 주민역량을 강화한다는 커다란 틀 아래 지역의 전통시장인 동래시장을 활성화하고 읍성 등 역사 유적공간 을 복원하여 서로 연계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사업을 진행하던 동래구는 근본적인 물음에 직면했다. ‘시설을 마련하고 지역을 정비하는 것으로는 뭔가 부족하다. 의욕 과 활력을 잃은 지역 주민들의 마음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고심 끝에 나온 것이 바로 「창조도시대학」이다. 「동래방래사업」을 이해하기 위해서 는 먼저 「창조도시대학」에 대해 이야기 해야만 한다. 주민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가 장 좋은 방법은 말 그대로 주민 스스로가 사업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에서 는 우선 이들을 위한 장(場)을 만들어주어야 했다. 대화의 場, 발표의 場 그리고 그 무엇보다 그들 자신의 역량을 강화할 교육의 場 을 말이다.

      사업을 진행하던 동래구는 근본적인 물음에 직면했다. ‘시설을 마련하고 지역을 정비하는 것으로는 뭔가 부족하다. 의욕과 활력을 잃은 지역 주민들의 마음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 것인가.’

      동래구의 신의 한수, 「창조도시대학」

      「동래방래사업」의 브레인이라고 할 수 있는 「창조도시대학」은 2013년 12주, 2014년 9월부터 12월까지 14주간으로 운영되었다. ‘대학’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기존의 교육 과정과는 차별화된 면모를 보여준 「창조도시대학」은, 기획과정에서부터 뚜렷한 목 표와 전문적인 협의체를 가지고 출범하였다. 특히 도시대학 운영의 중요한 사항을 협의하고 결정한 운영협의회가 중심이 되어 운영 방향과 교육과정을 검토하였다. 학장, 부학장, 총괄교수, 총괄간사, 실무간사 등 15명으로 구성된 협의체는 매주 1 회 회의를 통해 교육 과정에 대해 점검하고 수업의 방향성과 진행상황을 논의했다. 「창조도시대학」이 「동래방래사업」의 브레인이라면, 이들은 「창조도시대학」의 브레인 인 셈이었다.

      2014년 9월 중순 경, 인터넷 공지와 동별 순회 홍보를 돌며 지원자를 모집하기 시작 했을 때만해도, 지원자가 넘쳐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교육자와 수업의 질이 뛰어나기도 했지만 그만큼 동래의 예전 명성을 되찾고 싶은 주민들의 바람은 컸다. 그러나 수업의 질과 운영의 효율성을 생각하면, 지원자 모두에게 기회를 줄 수는 없 었다. 협의회는 서류 면접과정을 거쳐 정원에 맞게 입학자를 선별했다. 지원과정을 거쳐 입학한 주민은 92명. 이들 중에는 상인도 있었고 단체장도 있었고 사업가나 공 무원도 있었다. 실로 다양한 직종에 종사하고 있는 주민들이 귀한 시간을 할애하여 다른 무엇도 아닌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을 배우고자 도시대학의 문을 두드린 것이 다. 몸담고 있는 직업도, 조직도 달랐지만 이들의 목표는 하나였다. 지역을 위해 더 배우고, 그 배움을 바탕으로 무언가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것.

      커리큘럼은 크게 이론 수업과 스튜디오 수업으로 나뉘어졌다. 이론 수업은 도시재 생, 마을 만들기, 주민참여, 역사, 문화, 장소 등의 영양가 있는 주제로 이루어졌다. 매주 현장 스튜디오 수업도 진행되었다. 이론이 현장을 통해 배우는 것과 같을 수는 없다는 결론에서였다.

      동래에서 몇 십 년을 살아온 주민들이 14주의 교육과정을 거치며 새롭게 마주한 동 래는 달랐다.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새로 배우면서 학생들은 동래가 부산에서 어떠 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지역이며, 어떠한 특징과 문화와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가를 새롭게 인식했다.

      유사사례 답사
      유사사례 답사

      스튜디오 수업을 통해 지역의 곳곳을 방문하고 파악하는 과정을 거쳐, 마지막 두 주 에는 각각의 머릿속에 그려진 지도를 바탕으로 마을 활성화 계획을 구성 했다. 동래 의 문제가 바로 이들의 문제였다. 늦깎이 학생들은 열정적으로 수업에 참여했고 타인 의 의견을 경청했으며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도시대학에서 이들은 청년이되었다.

      토론하는 학생들

      다섯 개의 팀, 다섯 개의 꿈

      「창조도시대학」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향후 구(區)의 운영 방안에 실질적으로 도 움이 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주민 스스로가 도출해냈다는 것이다. 공통 과정인 이론 수업이 끝난 뒤, 학생들은 각자 선택한 팀에 합류하여 스튜디오 수업을 진행하였다. 스튜디오 수업은 동래구의 중심지역 다섯 곳을 기준으로 다섯 개의 팀을 나누어 진행 되었다.

      ‘온천장 재창조’ 팀의 테마는 ‘온천장의 꿈’이다. 온천 1동 주민을 포함하여 12명으로 구성된 이 팀은 80년대 이후 급격히 쇠퇴한 온천장을 다시 활성화 시킬 수 있는 방안 을 연구했다. 노후화된 건물과 상업시설의 쇠퇴, 고령화된 지역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는 다양한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왔다. 게스트 하우스를 조성하고 테마온천을 개발 하는 한편 온천장 쿠폰을 발행하여 근처 식당과 연계해 야시장을 활성화하자는 의 견, 패션거리의 빈 상가들을 미용과 연계한 거리로 조성하자는 의견, 문학에 나오는 거리를 재현하여 관광명소로 개발하자는 의견과 테마마당에서 동래학춤을 시연하자 는 의견등 수많은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왔다.

      전통시장 활력 강화’ 2팀의 별명은 ‘생생동래 시장만세’이다. 상인과 주민을 포함하여 9명으로 구성된 2팀의 주요 고민은 어떻게 하면 동래시장과 역사적 장소를 연계하고 활성화시킬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2팀은 동래시장의 주차장을 확충하는 사업에 적 극나선 것은 물론 문화탐방코스와 전통문화 저잣거리를 연계하여 동래시장의 전통 적인 이미지를 강화하려 애썼다. 기와형 튜브조명을 이용한 전통이동식 상점과 청사 초롱간판, LED 바닥포장과 같은 구체적인 사안들이 거론될 수 있었던 것은 이론교 육의 힘이기도 했다.

      이렇게 「창조도시대학」에서 나온 다양한 아이디어는 다시 「동래방래사업」이라는 큰 틀을 통해 실현되었다. 동래역 2번 출구를 기점으로 복합 환승센터 접속도로를 정비 한 ‘특화거리조성사업’이 그러한 경우이다. 이곳의 주요거리인 명륜1번가는 동래의 변 화를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장소이다. 창도조시대학 3팀은 이곳 ‘명륜 1번가’를 ‘명물 1번가’로 탈바꿈시켰다. 명륜 1번가에 직접 가게를 운영하는 상인들과 공무원 등 12명으로 구성된 3팀은, 지난 2년간 꾸준히 도시대학 활동에 참여해 크고 작은 성과를 거두었다. 2014년도는 특히 이곳을 찾기 시작한 젊은이들의 취향을 고려한 다 양한 아이디어들이 쏟아져 나온 해였다. ‘명륜 1번가’만의 아이콘과 상징물이 조성되 었고 거리공연이 펼쳐졌다. 상점의 간판이 통일된 디자인으로 정비된 것도 큰 수확이 었다. 상인들이 같은 마음을 가지고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은, 의견을 공유할 수 있는 자유로운 분위기가 형성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분위기 형성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이 창조도시대학이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역사문화관광트레일’ 5팀은 지역의 역사적 특성에 초점을 맞췄다. 이들은 지역의 역 사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급속한 개발로 손상된 역사문화자원을 복원하고 현대적인 환경과 조화를 이루게 하는 방안을 연구했다. 특히 근대목조건물을 거점공 간으로 활용하여 관람과 교육, 체험이 이루어질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하고자 시도 하였다.

      ‘동래읍성 주거지’ 4팀은 의외의 성과를 올린 팀이다. 대상지역 일부에 골목길을 조 성하는 과제를 해결하던 중 뜻밖의 성과를 거둔 것이다. 2015년 시공모사업인<범 죄예방 환경디자인사업>의 셉테드(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 분야에 선정되면서 4팀은 자체적인 사업비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사업대 상지인 복산동은 동래의 대표적 재개발 지역으로, 주민들의 참여가 절실히 필요한 지 역이었다. 처음엔 셉테드라는 전문 용어가 낯설기만 했던 주민들도 사업이 진행됨에 따라 다양한 아이디어들을 펼쳐놓기 시작했다. 재개발 지역에 벽화가 생기면, 오히려 아이들이 스스로를 못사는 지역에 살고 있다고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는 섬세한 지적 은 지역 주민이었기에 가능했다. 이에 따라 벽화 대신 운동공간과 안심벨 등의 프로 그램이 구성되었고 골목길 내에 방범 카메라도 설치되었다. ‘재개발구역의 공동화 현 상을 해결하고자하는 공동체 모임’이 조성된 것도 큰 수확이었다.

      참여자들은 이 모임에 「틈새 어울림 회」라는 이름을 붙이고 매주 화요일 오후에 정기 적인 모임을 가졌다. 도시대학에서도 이들을 위해 공가를 사랑방으로 조성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활동을 도왔다.

      창조도시대학 수료식

      민원 말고 조언

      14주 동안의 길고도 짧았던 교육은 지역뿐만 아니라 참여한 주민들의 삶을 변화 시 켰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했던가. 「창조도시대학」의 가장 큰 장점이자 매력은 이 사업이 가진 잠재력이다. 교육 기간은 한정되어 있지만 졸업생들이 앞으로 지역사회 에 미칠 영향은 섣불리 단정할 수 없다. 수료를 마친 학생들은 동창회 활동 등을 통해 지역사회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사업 담당자인 김현진주무관은 「창조도시대학」 이 불러온 가장 큰 변화로 주민들이 보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지역사회를 바라보게 된 것을 꼽았다.

      “민원은 대부분 지역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창조도시대학」에 서 나오는 이야기들은 대부분 긍정적인 것들이에요. 긍정적인 의견을 나누다보니 주 민들의 지역사회에 대한 전망도 한층 밝아졌습니다. 변화를 지켜본 저로서는 다른 지자체에서도 이런 소통의 창구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불만 뿐 아니라 긍정 적인 아이디어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 거죠.”

      김 주무관은 가장 기억에 남는 학생이 누구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개인 사업 하시던 분인데 처음에는 도시대학 자체에 정말 부정적이셨어요. 동래온 천장은 한 번 망했었기 때문에 더 이상 희망이 없을 거라는 말만 반복하셨죠. 그러면 서도 수업에는 꼬박꼬박 출석하셨는데, 지역에 대한 애착은 많으셨던 것 같아요. 지 금요? 지금은 둘째가라면 서운할 활동가가 되셨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셨다니까 요.”

      실제로 지역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는 확연히 늘어났다. 통닭집을 운영하는 2팀의 청 년문화존의 한 사장님도 사업에 필요한 공간을 무상으로 제공해 줄 만큼 열정적이다. 지난 7월 3일 수료식을 가진 「창조도시대학」 2기 졸업생들은 한 명 한 명이 지역의 곳곳 에 뿌려질 소중한 씨앗들이다. 그리고 이들의 열정은 지역사회에 불어온 바람을 타고 3 기, 4기 졸업생들에게로 이어져 마침내 온 동래를 변화시킬 것이다.

      민원은 대부분 지역사회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창조도시대학」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은 거의가 긍정적인 것들이예요. 긍정적인 의견을 나누다보니 주민들의 지역사회에 대한 전망도 한층 밝아졌습니다

      동래온천

      “온정은 그 열이 계란을 익힐 만하고, 병자가 목욕하면 병이 낫는다.”라 는 말이 전해지는 동래온천은. 최대 3,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온천장에 다양한 이벤트 탕이 마련되어 있다. 노족온탕 2곳도 50~60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을 만큼 넉넉하기로 유 명하다. 노족온탕에서는 온천수를 식혀서 사용하고 있어, 4계절 내내 따 끈한 족욕이 가능하다.

      동래읍성역사축제

      매년 10월 둘째 주에 열리는 ‘동래읍 성역사축제’는 임진왜란 당시의 동 래성전투와 동래장터를 맛깔나게 재 현한 축제이다. 조선시대 장터를 그 대로 재현한 동래장터를 즐길 수 있 고 ‘동래통보’엽전으로 파전과 쑥굴 레떡을 사는 등의 체험을 즐길 수 있 다. 생활민속품을 구경하며 500년 전 조선시대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 가 보자.

      동래부동헌

      동래부동헌은 조선시대 동래부사가 업무를 처리하던 관청이다. 동래부 (現 부산)는 당시에도 군사적, 외교적 으로 중요한 지역이었기 때문에 다른 지방보다 관청의 규모가 컸다. 일제 강점기 이후엔 구조와 벽, 마루 등이 고쳐져 상당부분 원형을 잃긴 했으 나, 여전히 조선후기 관청의 건물양 식을 대변하고 있는 중요한 건축물 중 하나이다. (시 유형문화제 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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