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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국영방송 NHK의 집중보도, 중국 상하이 통지대학교의 벤치마킹 방문, 스페인 몬드라곤/아그라파 협동조합과의 교류, 7만여 명의 관광객 유치. 경 남 함안군의 작은 마을이 3년만에 이루어낸 성과이다. 대체 어떤 사업이기에 이토록 많은 관심과 조명을 받고 있는 것일까? 해바라기로 이루어낸 창조적 마을 만들기 사업을 만나본다.
서울에서 활동하던 상업 사진작가 유덕재 씨가 ‘강주마을’로 귀촌한 것은 8년 전의 일이다. 경남 함안군에서도 서북쪽 끄트머리에 위치한 작은 마을 강주리는 그저 여 느 시골 동네와 마찬가지로 고령화와 산업화로 농촌의 생기를 잃어가는 곳이었다. 십수 년 전부터 무분별하게 산업시설이 들어서고 있었고 대기오염과 농업용수 오염 은 물론 심각한 토양오염으로 농업환경과 주민들 삶의 터전이 날로 피폐해져 가고 있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랐지만 언제나 농촌에서의 삶을 꿈꿔왔던 유덕재 씨의 눈 에 강주마을의 현실은 안타깝게 보이기만 했다. 법수산 자락이 펼쳐져 있고 남강이 권역을 중심으로 휘돌아 나가는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마을 은 악화일로에 놓여 있었다.
단순한 시골 생활이 아닌, 정이 넘치는 농촌 공동체 속에서 살기를 바랐던 유 씨이지 만 외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처음에는 마을의 외톨이 신세였다. 농촌경관사진 공모 전을 유치하기도 하고 함안 지역의 낙후된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함안 교육 지원청 과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사진강사로 재능기부를 펼치기도 했다. 그러나 노령화되고 보수적인 마을 원주민들과 동화될 수 있는 실질적인 기회는 아니었다. ‘강주마을이 쇠락해가는 시골마을이 아닌 보기 좋고 특색 있는 마을이 되어 주민들이 행복해지 고 더 많은 귀농, 귀촌인이 찾아오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하고 골똘히 생각하는 것은 곧 유 씨의 일과가 되었다. 6명의 주민대표들에게 모임을 요청하여 마을 발전 에 대해 진지한 토론의 시간을 갖기도 했다. 곧 주민 전체가 참석하는 마을 회의까지 열렸다. 마을 발전 방안을 공식적으로 추진하자는 의견을 피력하였지만 주민들의 외면 속에 기회는 불발로 돌아가고 만다. 고령과 건강상의 이유, 바쁜 농사일 때문 에 주민들 스스로 새로운 무언가를 추진할 여력이 없다는 이유였다. 유 씨는 이에 굴 하지 않고 마을 원로들을 설득하여 전국의 마을재생사업 선진지 견학에 나서게 된 다. 행정이나 외부 자본에 의존하지 않고 주민이 십시일반 한 자체경비로 치른 첫 번 째 활동이었다. 부산의 감천마을, 통영 동피랑마을 등을 방문하여 마을재생사업의 성공, 실패 사례를 집중 분석하기 위한 자리였다. 소극적이기만 했던 주민들의 생각 과 태도에 역력한 변화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우리도 할 수 있겠다’는 믿음이 싹트 기 시작한 것이다.
드디어 진정한 의미의 주민총회가 열리게 되었다. 동장을 비롯하여 마을 주민 28명 이 참가하여 ‘강주문화예술마을’의 초석을 만들기 위한 논의에 들어갔다. “주민 스 스로 역량을 키우고 의지를 모아 경쟁력을 키우자. 공동체 의식도 생기고 자생할 수 있는 희망이 생길 것이다.”라는 말에 전원이 동의하는 의미있는 순간이었다. 자연스 레 강주문화마을 발전위원회가 발족되었다.
주민들은 우선 초라하고 피폐한 마을 경관부터 차근차근 바꾸어 나가기로 결정했 다. 마을 대청소가 대대적으로 진행되었고 유덕재 씨가 총대를 메고 온·오프라인 의 여러 봉사단체에 강주마을 벽화작업에 대한 문의를 했다. 부단한 노력 끝에 경남 사회적경제지원센터, 경남자원봉사센터와 협약을 체결하게 되었다. 이는 강주마을 이 많은 전문가 그룹과의 거버넌스 체계를 구축하는 바탕이 된다. 2013년 5월, 고비 끝에 러브경남 대학생봉사단과 마을 주민들의 화합으로 강주마을 회색빛 담장들 은 알록달록 색색의 옷을 입게 되었다. 법수산권역의 조이제 개발위원장등은 쌀 기 부를 통해 자원봉사자들을 위한 식사를 준비하였고 함안 칠서면에 위치한 노루페 인트 공장에서 작업에 필요한 페인트도 원가에 지원받는 행운도 뒤따랐다. 마을 축 제처럼 이뤄진 벽화작업은 앞으로 이어질 강주마을 개발사업의 희망적인 밑그림과도 같았다. 마을 벽화에 해바라기 그림을 그려넣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강주문화마 을 발전위원회에서는 사업 초기 논의과정에서부터 지역 경쟁력 사업을 두고 고민해 왔다. 관광객들에게 매력을 보여주기에는 기본적으로 지역의 경관자원이 부족했고 공장시설 난립 탓에 토양오염과 환경 훼손도 심했다. 주민의 고령화로 인해 휴경지 가 자꾸만 늘어가는 실정이었기 때문에 노는 땅을 이용해 경관도 살리고 지속적인 소득도 낼 방법에 대한 논의가 오갔다. 다른 지자체에서 흔히들 해온 그저 일회성으 로 꽃만 보고 끝나는 소모적인 사업을 벗어나고자 하는 의견이 많았다. 해바라기는 꽃과 씨, 줄기 등 버릴 것이 없는 작물로,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6차 산업에 최적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농산물을 생산하여 가공품을 만들어 유통하고 도시민 에게 체험과 관광의 기회를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해바라기는 오염된 토양환경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에 토양오염에 고통받는 강주 마을에 안성맞춤인 작물이었다. 미국 디트로이트의 한 식물정화회사가 납으로 오 염된 다임러크라이슬러 공장 주변에 해바라기를 심어 흙 속의 납 농도를 절반 이하 로 줄였다는 사례가 있었다. 일본 역시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오염된 토양의 방사 성 물질 감축 해법을 해바라기 식재를 통해 해결하고 있었다. 당장 주민 자체 성금 을 모아 해바라기 종자 8kg을 구입하였다. 마을주민 몇몇 분과 조재영 향우회장은 유휴 농경지 1만6천여㎡를 기꺼이 내놓았다. 주민들이 힘을 모아 개간작업에 나섰 고 비닐하우스도 설치하며 모종을 키우기 위한 준비작업을 마쳤다. 대학생 자원봉 사자 40명까지 투입되었어도 일손은 여전히 모자랐다. 농촌마을이었음에도 해바라 기 농사는 처음인지라 생육 과정에 대한 지식이 다소 부족했지만 파종 첫 해이니만 큼 두려워하지 않고 여러 시도를 감행했다. 유덕재 씨는 사비를 털어 북유럽 5개국 의 해바라기 사업 현장을 둘러보기도 하고 스페인의 해바라기 생산, 가공, 유통 현 장 견학을 다녀오는 열정을 보였다.
강주마을의 주민 주도 자립형 마을 만들기 사업이 함안군 전체로 불씨를 퍼뜨렸다. 법수산권역은 종합 거버넌스 체제를 수립했고, 마을 공공경영 사례학습을 통하여 인근 5개 마을 역시 자립에 대한 희망을 품게 되었다
상품명 | 규격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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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 유 | 160g: 13,000원 300g: 26,000원 420g: 33,000원 | 2차 가공품 |
해바라기 씨 | 1kg: 35,000원 | 1차 생산물 |
해바라기 비누 | 2장: 10,000원 | 2차 가공품 |
노력의 땀방울은 곧 현실적인 성과가 되었다. 강주마을 인근의 폐교된 초등학교 운 동장에서 제1회 해바라기 축제를 개최하게 된 것이다. 추진위원회장 자리가 비어 있 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무사히 행사가 열릴 수 있었던 것은 유덕재 씨의 책임감, 그리고 마을 자금 500만 원을 쾌척하기로 한 주민들의 정성 덕이었다. 1만여 명의 방문객 앞에서 난타와 사물놀이 등 준비한 공연을 선보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축제와 해바라기 가공품 제조, 판매 등으로 고령의 마을 주민들도 함께할 수 있는 일자리가 창출되었다. 주민 소득이 증대된 것은 물론이다. 해바라기 축제 후 500kg 의 해바라기 씨를 채취하였다. 2013년에 해바라기 가공품 판매로 얻은 소득은 약 5 천만 원이다. 다음해인 2014년에는 1억5천만 원가량의 수익을 창출했다. 1년만에 소득 3배 증가라는 대단한 성과를 거둔 것이다. 지금은 해바라기 유와 해바라기 비 누, 해바라기 씨를 이용한 ‘강주햇살 에너지바’ 등을 판매하고 있다. 특히 강주햇살 에너지바는 현재 대기업의 OEM 계약 의뢰가 들어와 협상과정에 있다고 하니 작은 시골마을 강주리의 저력이 대단하다. 그러나 이처럼 6차 산업이 자리잡게 된 것도 쉬 운 일은 아니었다. 국내에 해바라기 재배와 관련된 정보가 전무하였고 토종 종자의 보존과 보급, 가공을 위한 도정시설인 해바라기 씨 탈피 장비도 구할 수가 없어 애 를 먹었다. 해바라기 식용유 생산에 필요한 착유기계 설비 가공시설 역시 마찬가지 였다. 6차 산업에 필요한 장비 일체에 대해 해외 기술과 생산에만 의지해야 하는 국 내의 취약한 기반이 안타까웠다. 여러 애로사항에도 불구하고 백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해결의 기미가 조금씩 보이는 실정이다.
자발적 기금조성으로 소박하게 시작한 사업의 규모가 커지고 정량적 성과를 얻으면 서 군에서도 강주마을을 주목하게 되었다. 함안군청에서는 강주마을 사업에 적극 적으로 관심을 표하며 농촌현장포럼을 열었다. 강주마을 사람들뿐만 아니라 법수 산권역의 주요 인사와 한국농어촌공사 함안지사에서도 참석한 자리였다. 권역사업 대상인 5개 마을의 주민대표들 역시 권역단위 종합개발사업에 큰 관심을 보였다. 마 을자원과 주민역량에 관한 연구와 토론에서 강주마을은 이미 훌륭한 모델이었다. 이후에도 2회 더 포럼을 진행하면서 제2회 해바라기 축제에는 법수산권역의 5개 마을이 함께 참여하기로 결정한다. 진안군 마을만들기 지원센터를 방문하여 선진지 성 공사례를 청취하기도 하며 마을 공동체 형성 연구를 계속해나갔다. 강주마을의 주민 주도 자립형 마을 만들기 사업이 함안군 전체로 불씨를 퍼뜨린 것이다.
이후 법수산권역은 종합 거버넌스 체제를 수립했고, 마을 공공경영 사례학습을 통하 여 인근 5개 마을 역시 자립에 대한 희망을 품게 되었다. 일반농어촌 개발사업의 효율 적 추진을 위해 꼭 필요한 지원 시스템이었다. 대내외의 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 응하기 위해 공동체를 구축하고 마을 리더 연합회를 구성했다. 사업 추진의 노하우 를 공유하여 마을사업장 상호 간에 상생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었다. 군 자체 에서 ‘농촌마을 재생사업’의 단계별 추진과정과 평가항목을 개발하고 심사방법을 마 련했다. 지역 대학과의 교류도 있었다. 경남대학교의 지역사회개발 전공 학생들과 마 을 어르신들 간의 소통으로 마을은 더욱 활기를 띠었고, 관학협력을 통하여 마을만 들기 분야를 경남대 행정학과의 교과목으로 지정하여 지역사회에 확산시키고 있다.
“만나야 풀리고, 풀리면 또 만나라”는 만남과 소통의 방식이 결국 승리했다. 귀촌인과 원주민이 어울리는 진정한 마을공동체가 자리를 잡은 것이다. 다양한 사회적자본에 대한 마을 주민의 만족도가 향상되었고 공동체의식은 단단해졌다.
5개 마을 주민들이 마음을 모아 ‘법수산권역 영농조합법인’을 창립했다. 유덕재 씨 가 법인회장으로 추대되었고 10명의 이사가 함께하는 건실한 영농법인으로서의 모 습을 갖추었다. 그러나 좋은 일에는 나쁜 일도 따라오는 법. 첫 번째 해바라기 축제 를 마치고부터 마을에 불협화음이 나기 시작했다. 마을 리더와 소외감을 느끼는 이 장들과의 관계에서 비롯한 분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 번 잡음이 일기 시작하자 모함이 난무하고 주민들이 서로를 매도하는 등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해바라기 축 제와 가공품 판매에 대한 회계의 투명성까지 의심받기 시작했다. 이는 다행히 철저 히 분석되어 문제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남이 잘되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일부 주민들 사이에서 지역 이기주의가 팽배했다. 사업에 동참하는 주민들과 불참하는 주민 사이에서, 그리고 귀촌인과 토착민 사이에서 갈등이 발생했다. 이에 함안군의 갈등관리 프로그램이 즉각적으로 개입했다. 많은 정성과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갈등 은 쉽게 해소되지 않았다. 오히려 반발은 더 극심해지기만 했다. 군에서는 수시로 면 담의 자리를 마련하고 또 한편으로는 리더의 역할 증대를 요구했다. 주민들이 함께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기 위해 지속적인 관찰을 게을리하지 않았으며 비상상황에 즉각적으로 대처하는 열성을 보였다. 문제를 제기하는 주민들에게는 마을 사업에 역할을 주고 참여를 유도했다. “만나야 풀리고, 풀리면 또 만나라”는 만남과 소통의 방식이 결국 승리했다. 귀촌인과 원주민이 어울리는 진정한 마을공동체가 자리를 잡은 것이다. 다양한 사회적자본에 대한 마을 주민의 만족도가 향상되었고 비온 뒤 에 굳는다는 말처럼 공동체의식은 단단해졌다. 한 주민은 고령의 불편한 몸에도 불 구하고 얼굴에 웃음꽃을 활짝 피우며 이렇게 말한다.
“나는 우리 위원장이 제일 좋아요. 우리 마을 예쁘게 잘 살게 해주고 우리 돈도 벌어 형편도 펴게 해주는데 이보다 더 좋은 사람이 어디 있소?” 이렇게 마을 주민들로부터 신뢰와 인정을 받고 있는 유덕재 위원장은 마을에서 ‘해 바라기 박사님’으로 통한다. 유 위원장은 “마을 어르신들이 해바라기 박사님이라 불 러주는 덕분에 비공식 해바라기 박사학위도 취득했다”며 강주마을에 대한 따뜻한 애정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사업 시작 2년만에 나타난 변화였다. 그사이 강주마을의 인지도는 급상승했고 제2회 해바라기 축제 때에는 약 7만 명의 관광객이 마을을 방문했다. 4만 5000㎡에 활짝 핀 60만여 송이의 해바라기는 쉽게 볼 수 없는 장관을 이루었다. 관광객들은 뜨거운 날 씨에도 아랑곳없이 끝없이 펼쳐진 노란 물결 속에서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추억 을 담았다.
축제의 성공도 놀랍지만 더 이례적인 것은 국내외 언론매체의 관심이 집중되었다는 점이다. 일본의 공영방송 NHK은 특집방송으로 30분간 법수산권역 해바라기 축제 의 기획과 사례에 대해 집중 탐구했다. 국내 방송인 KBS, SBS, YTN을 비롯한 수많 은 언론이 앞다투어 강주마을 해바라기 축제의 성공을 보도했다. KBS에서는 “마을 재생사업의 성공사례 탐구와 전파”라는 테마로 2부작 방송 <행복 바이러스>를 내보 냈고 MBN에서도 8부작 방송 <해뜰날>을 방영 준비 중이다.
마을 공동체 형성 기여 정도 3.12 ,마을 정체성 확립 기여 정도 3.1 ,신뢰와 협업 향상 정도 3.32,주민 역량 강화 정도 3.23,주민참여 기여도 3.2,자긍심 강화 정도 3.41,전체 평균 3.24
프로그램 만족도 3.31,주민 이해도 3.28,체육문화활동 기여 정도 3.2,삶의 질 향상 기여 정도 3.35,전체 평균 3.29
또한 법수산권역은 건실하고 성공적인 협동조합의 탄생을 지원하는 경남 사회적 경제지원센터의 인큐베이팅 과정에 함께하고 있다. 신용협동조합의 협약과 지원으 로 해외 선진지 벤치마킹 프로그램에도 참여하고 있다. 스페인 몬드라곤 협동조합 과 아그라파 협동조합, BBK 은행, 몬드라곤 대학 부총장과 함께하는 시간을 통해 성공적인 마을 만들기 사업과 앞으로 구성할 ‘해바라기 협동조합’의 발전 방향에 대 한 토론과 연구를 가졌다. 선진지 견학에 처음 나서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거 꾸로 중국 상하이의 통지대학교를 비롯해 국내외 마을의 벤치마킹 방문이 쇄도하고 있다. 여러 지역과 단체들의 강주마을 벤치마킹에 대한 관심이 급물살을 타면서 마을 만들기의 모범사례가 널리 퍼지고 있다. 2014년 11월에는 제1회 농림축산식품부 주최 ‘행복마을 만들기 콘테스트’에 참가하여 당당히 경관환경부문 국무총리상을 수상하는 영예도 안았다. 법수산권역 사람들의 자부심이 커질수록 마을을 사랑하 는 마음도 더욱 단단해진다.
파종에서부터 씨앗 채집까지 서너달밖에 걸리지 않는 해바라기의 특성 덕에 강주마 을은 ‘청보리 축제’라는 연계 행사를 만들 수 있었다. 해바라기 식재시기 이전에 공한 기를 이용하여 청보리를 심고 다음해까지 길러내는 것이다. 5월이 되면 뜨거운 햇살 아래 연둣빛 청보리가 바다처럼 물결치는 장관이 펼쳐진다. 제1회 청보리 축제에서 는 해바라기 마을 모델 선발대회와 청보리밭 세미누드 사진촬영 대회가 열렸다. 전 국의 사진 동호회 회원 500여 명과 일반 방문객 5천여 명이 또다시 강주마을을 찾아 왔다. 청보리는 조사료로 판로가 보장되어 있으며 마을의 축산농가에도 사료로 공 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경작이 쉬운 편이고 대부분의 농작업이 기계화되어 있 어 고령인 주민들도 효율적으로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었다. 수확한 청보리를 판매 하여 거둔 1천만 원의 소득은 해바라기 종자를 구입하는 자금으로 사용되었다. 브 랜드 창출, 관광객 유입, 유휴지 활용, 노동력 창출, 사료 공급, 소득으로 해바라기 축제 준비 등…… 1석6조의 효과라 할 수 있겠다. 과연 권역단위개발의 달인이 된 강 주마을 사람들답다.
법수산권역 마을발전 플랜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강주마을에 치즈 체험장 조성 사 업을 벌이고 치즈 체험 프로그램까지 만들었다. 자체 기금이 대부분인 단돈 165만 원 으로 사업을 시작하여 2천여 명의 유소년 손님의 방문을 받았다. 수익금으로는 2차 마을벽화 사업을 실시했다. 친환경 생태연못 조성사업도 이루어졌다. 인공연못을 조성하여 방문객에게 마을 내 수변 특수경관을 제공할 수 있도록 했다. 온대 수련 등 수생식물도 식재하여 생태교육의 장을 마련했다. 마을 주민들은 성과에 자만하지 않고 지금도 계속해서 선진지 견학에 나서고 있다. 끊임없는 연구와 노력만이 마 을 발전의 동력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행복해진 마을답게 귀농인, 귀촌인은 점차로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귀농, 귀촌인 과 토착민간의 화합이 이루어지고 농가소득이 높아지면서 법수산권역으로 유입되 는 인구가 나날이 늘고 있다.
연도 | 합계 | 2000~2010 | 2011~2012 | 2013~2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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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수 | 641가구 | 49 | 293 | 299 |
인구수 | 1,184명 | 113 | 502 | 569 |
연도 | 2011 | 2012 | 2013 | 2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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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수 | 28,523가구 | 29,076 | 29,454 | 30,289 |
인구수 | 70,100명 | 70,443(▲343) | 70,868(▲425) | 72,330(▲1,462) |
법수산권역 사람들은 지금도 단순히 아이템을 모방하거나 성공 사례만을 뒤쫓는 것은 지양한다. 대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발굴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젊 은 관광객층의 트렌드에 발맞추어 페이스북, 트위터, 밴드, 블로그 등의 소셜네트워 크 홍보에도 열심이다. 다양한 분야의 20여 개 사회단체와 협약을 맺기도 했다.
강주마을의 달력에는 앞으로의 계획이 빼곡이 들어차 있다. 다양한 수생식물군이 자라는 대송늪을 보호하고 보다 성숙한 해바라기 축제를 만들기 위해 일본 홋카이 도 지역을 견학할 예정이다. 홋카이도 해바라기 축제 위원회와 법수산권역 해바라 기 축제 위원회 간의 연계협력 협약체결로 상호 정보 교류와 양국 탐방객의 방문 교 류를 꾀할 계획도 있다. 찬란하게 핀 해바라기들처럼 법수산권역의 마을발전 사업 역시 고개를 숙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기 바란다.
입곡저수지 상류에는 자연생태 그대로 보존된 ‘입곡군 립공원’이 형성되어 있다. 깎아지른 절벽의 우거진 송 림과 완만한 경사지에 들어선 활엽수림과 침엽수림이 멋진 조화를 이룬다. 수려한 자연풍광과 함께 전설을 간직한 기암절벽이 아름답다. 반짝 저수지를 가로 지 르는 출렁다리를 건너는 산책로는 그야말로 일품이 다. 간혹 백로가 수려한 자태를 뽐내기도 하는데, 한 폭의 그림이 따로 없다
삼국시대 아라가야(阿羅伽倻)의 왕과 귀족의 무덤이 조성괴어 있는 고분군으로, 찬란했던 아라가야의 문 화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적이다. 말이산이 란 ‘머리산’을 한자어로 표기한 것으로 왕의 무덤이 있 는 산이라는 뜻이다. 대표적인 출토 유물로는 불꽃무 늬토기, 수레바퀴모양토기, 쌍용문, 둥근고리큰칼 등 다양한 토기와 철기들이 있다. ‘철의 왕국’으로 불리던 아라가야의 우수한 문화상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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