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수 2190
전주에 들러 시내 비빔밥집, 콩나물국밥집에 가본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문 인화나 서화 작품 한 점 걸려 있지 않은 곳이 없다는 점을 눈치챘을 것이다. 명실상부 예향의 도시가 가진 면모다. 이곳 전주에서 전북 문화예술인들의 자부심을 모아 쌓아올린 전북예술회관의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30년 넘 은 노후 시설로 쇠락해가던 전북예술회관이 최근, 찬란하고도 초라했던 과 거를 딛고 되살아났다.
예향이라 자부하는 전라북도였지만 1970~80년 무렵까지는 전시나 공연 하나 제 대로 할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이에 전북 문화예술인들은 사단법인 전북문화예술 회관 건립추진단을 만들었다. 자신들의 땀과 예술혼이 담긴 소중한 작품을 팔아 번 돈을 희사하기로 뜻을 모은 것이다. 이렇게 마련된 기금은 전북예술회관 건립 공사비의 50% 정도를 차지하는 6억 8천만 원가량이었다. 도에서 지방비를 투입하여 추 가 공사비를 부담하기로 하였고 곧 모두의 무수한 바람 속에 ‘전북예술회관’이 탄생 을 맞았다. 전주의 랜드마크인 미원탑거리에 자리를 잡은 전북예술회관은 전주 시 민, 나아가 전북도민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지역 예술인들이 한 장 한 장 쌓아올린 붉은 벽돌 건물은 당시 시내에서 가장 눈에 띄는 신축 건물이었다. 이쯤 되면 예술회 관이 전주에서 갖는 위상을 가늠할 수 있겠다.
1982년 건립 당시의 전북예술회관은 실상 그 시설이 미비해 충분한 무대 효과를 낼 수 없었다. 천장이 낮아 바텐(batten, 무대 시설을 거는 장치) 장막을 내리는 데에도 한계가 있고 연극 상연 시에도 무대 전환을 할 수 없었다. 엘리베이터가 없어 공연 스태프들은 무거운 무대 장비를 4층 공연장까지 계단으로 옮겨야 했다. 예술인들은 씁쓸한 우스갯소리로 예술회관 계단을 ‘108계단’이라 부르면서도 열악한 상황 속에 서 꿋꿋이 공연을 펼쳤다.
그렇게 10년 이상 공연과 전시를 이어왔지만 협소하다는 불편의 목소리가 커져갔다. 그리고 때마침 1993년 무렵 전국 시도 지자체에 대형 공연장 건립 붐이 일기 시작했 다. 서울 예술의전당, 경남문예회관, 부산문예회관, 광주문예회관 등 각 시도에 대형 공연시설이 불어났다. 전북에서도 “우리도 이런 예술회관 하나쯤 있어야 하지 않겠 나” 하는 의견이 나왔고 2001년, 전주 덕진동에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이 들어섰다.
국내 최고 수준의 시설을 갖춘 최첨단 문화예술 시설인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이 개관 하면서 전북예술회관은 쇠락의 길을 걸었다. 다목적 대공연장, 중극장, 소극장, 전시 장에 그리스-로마 시대의 노천극장을 연상시키는 야외공연장까지 갖춘 소리문화의 전당이 생긴 이상 필연적인 결과였다. 그 기능이 축소되면서 전북예술회관은 점점 도 민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갔다.
그러던 중 예술회관의 운명에 새로운 서막을 열어줄 사건이 찾아왔다. 전라북도와 문화체육관광부가 손잡고 전북의 전통 문화자원인 ‘춘향 이야기’를 글로벌 공연문화 관광상품으로 개발하기로 한 것이다. 전라북도는 공연예술 활용 관광자원화 사업 아이디어로 문화체육관광부를 설득하여 국비를 지원받았다. 그 결과로 전북 대표 브 랜드 공연 <뮤지컬 춘향>이 보금자리로 삼을 상설 공연장을 찾고 있었다.
연간 592만 명이 찾는 인기 관광지인 전주 한옥마을과 불과 700m 거리인 전북예술 회관이 후보로 떠올랐다. 예술회관은 그 자체가 전북 문화예술인의 기부채납 형태로 지어진 건물이기에 도민들의 각별한 관심과 애정이 담겨 있어 더욱 의미 있는 제안이 었다. 그러나 1982년 건립 이후 그대로인 시설로는 절대 역부족이었다. 30여 년간 개 선 없이 노후된 시설과 비좁은 공간에 들어찬 780석의 좌석은 공연관계자들을 경악 시켰다. 공연장 전기 시설은 아직도 전압이 110V에 맞추어져 있었고 무대 바텐은 너 무 오래되어 구동하기도 힘들 정도였다. 음향이나 조명이 거의 필요 없는 합창 공연 이나 작은 규모의 라이브 콘서트의 대관 용도로만 간신히 사용되는 실정이었다. 1년 에 대관되는 횟수가 20회였다고 하니 얼마나 외면받던 공연장이었는지 알 만하다.
그러나 외국의 경우를 보자. 1920년대 영화관으로 지어진 건물을 구조변경하여 새롭 게 태어난 독일 베를린의 샤우뷔너 극장, 여객선용 엔진을 생산하던 조선소가 연극과 재즈 공연장으로 탈바꿈한 스위스 취리히의 시프바우 극장 등 참고할 만한 모범적인 리모델링 사례는 많았다. 어쩌면 전북예술회관도 이들처럼 먼지를 벗고 새롭게 태어 날 수 있지 않을까. 전북도청은 예술회관에 희망을 걸어보기로 했다.
2013년, 지역발전 특별회계사업으로 전북예술회관 기능보강사업이 결정되었다. 전 북도청과 상설공연추진단은 일단 8회의 시험공연을 운영하기로 했다. 규모가 작은 시험공연이라고 해도 절대 만만한 것은 아니었다. 낡은 천장 부분의 벌어진 틈은 음 향 볼륨이 조금만 높아져도 흔들거려 스태프들의 마음을 조마조마하게 했다. 장비를 렌탈하여 아래층에서 220V 전기를 공연장까지 끌어올리는 작업까지 감행했다. 무대 상황에 맞추어 현장에서 급히 대본을 수정하기도 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남원을 배경으로 삼은 단출한 한옥 모양 세트 하나만 놓고 몇 가지 조명만으로 간소 하게 치른 공연이었다. 주연급으로는 경력 있는 배우들을 투입했지만 조연급에는 전 북지역에서 활동 중인 배우들을 기용했다. 전북지역 예술인 일자리 창출을 시험해보 는 무대이기도 했던 것이다.
어찌 보면 초라한 공연이었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공연계 인사가 아닌 실제 일반 관객들을 대상으로 ‘8회 전회 매진’이라는 성과를 거두었다. 상연으로만 성공을 거둔 것이 아니다. 시험 공연의 주목적이었던 ‘기능보강사업을 위한 미비 시스템 체크’ 측면 에서도 원하는 바를 이루었다.
시민들에게도 성역과도 같은 소중한 공간을 보존하고 지킬 수 있다는 부분에서, 또한 신축 없이 적은 비용으로 공간 기능을 재생한다는 측면에서도 기능보강사업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이때부터는 매일이 회의의 연속이었다. 2014년 6월로 예정된 <뮤지컬 춘향> 개막을 향한 달리기가 시작된 것이다. 당시 전북도청 도서관문화시설팀과 브랜드 공연의 진 행을 맡은 상설공연추진단이 똘똘 뭉쳤다. 정기적으로 모여 안전진단에서부터 시작 하여 공연장에 구조적인 문제는 없는지, 최적화된 공연 장비 시스템을 어떻게 구축하 면 좋을지 토론과 연구를 거듭했다. 도의 어려운 살림에서 배분받은 7억6천만 원의 예산 집행률을 극대화하기 위한 싸움이었다.
논의가 거듭될수록 최우선으로 떠오르는 과제는 ‘안전’ 또 안전이었다. 공연장의 안정 성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 부분부터 우선적으로 보강 대상에 선정되었다. 조금만 음향 이 커져도 충격을 받아 떨어질 위험이 있던 천장, 보통 체격의 성인 남성이 앉아도 몸이 꽉 끼어 비좁던 객석, 그리고 전기 승압 문제가 우선순위에 올랐다. 4층까지 아찔하게 이어진 계단이 장애우와 노약자의 접근성을 가로막았기에 엘리베이터 설치가 절실했 다. 무대장치를 옮겨야 하는 제작진들에게도 꼭 필요한 부분이었다. 예산도 부족했지 만 예술회관의 구조적인 문제로 설치할 수 있을지 섣부른 판단이 어려웠다. 아쉽지만 엘리베이터 설치는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홍승광 추진단장은 이렇게 말한다.
“한정된 예산으로 최소한의 부분만 보완하여 공연에 최적화된 시스템을 갖추고자 노 력했습니다. 공연 장비나 시스템에 욕심을 부리자면 끝이 없기 때문이죠.”
또한 초기 간담회에서는 자존감 강한 원로 예술인들의 아쉬움 섞인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였다. 전북지역 최초 예술회관이라는 문화예술인들의 자부심이자 전북예총의 상징과도 같은 건물이건만, 낡고 퇴락해 제대로 활용조차 할 수 없던 어려움이 많았 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작가들이나 공간을 찾기 어려운 신진 작가들에게 저 렴한 대관료로 제공할 수 있는 뜻깊은 장소이기도 했다. 그 의미와 역사성을 훼손하 지 않고 공연장 기능을 되살리자는 것이 관(官)과 민(民)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예술 인들에게도 시민들에게도 성역과도 같은 소중한 공간을 보존하고 지킬 수 있다는 부 분에서, 또한 신축 없이 적은 비용으로 공간 기능을 재생한다는 측면에서도 전북예 술회관 기능보강사업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2013년 12월, 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위 한 사업계획 조기 수립이 드디어 마무리되었다.
기계적 시스템 문제를 체크한 후 본격적인 리모델링 시공에 돌입하였다. 총 사업비의 40%를 차지하는 국비는 2014년도 지역발전 특별회계사업(생활계정)으로 확보되었 고 나머지 60%는 도비로 충당하였다.
780석에 달하던 객석 의자는 1층과 2층을 합쳐 총 357석으로 대폭 줄었다. 객석 수가 준 만큼 관객 1인이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은 늘어난 셈이다. 객석 간 통로가 확장되어 쾌적한 공연 환경이 조성되었다. 상설 브랜드 공연이기 때문에 객석 수가 줄어도 공연 횟수가 많아져 관객 수요는 충분히 소화가 가능하다는 판단이었다.
무대와 관람석의 바닥도 깔끔하게 정비했고 공연장 내벽 전체의 도장공사를 새로 하 였다. 공연장 내부 천장 역시 석면 보드에서 무(無)석면 텍스로 전면 교체했다. 낡아서 군데군데 부서진 곳이 있던 석고 보드는 석면을 함유하고 있어 유해 가능성이 있었 다. 허술했던 공연장 입구에도 강화유리문을 설치하여 안전한 출입을 도왔다. 구식 110V를 220V로 승압하려 변압기를 교체하고 비상발전기도 설치하여 전기 사용에서 도 안정성을 도모했다. 세트 바텐과 천장 조명 바텐이 새롭게 설치되었고, 바텐을 구 동하는 데 쓰이는 낡은 모터 부분의 기계부 역시 전면 교체되었다.
전기 제어용 컨트롤 패널 등 무대장치 역시 보강되었다. 무대의 상하좌우 폭에 한계 가 있는 부분은 시공으로도 고칠 도리가 없었다. 대신 세트팀과 논의하여 무대 디자 인 측면에서 최대한 변화를 줄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였다. 2014년 6월에 1차 기능보 강 공사를 완료한 후 집행 잔액을 활용하여 기능 보완이 시급한 사업을 중심으로 보 완 공사를 추가로 실시했다. 공연 외적으로 필요했던 지붕 방수 공사나 20년 넘은 냉 방기 압축기 교체와 같은 설비 교체가 이에 해당했다. 이로써 예산 집행률을 98.8%까 지 끌어올릴 수 있었다.
도서관문화시설팀과 상설공연추진단의 일차적 목표는 후일 만약 상설 공연이 없어 진다 하더라도 이곳을 작은 중소규모의 무용이나 연극 공연장으로 활용할 수 있도 록 하는 것이었다. 사업관계자들은 전라북도에 훌륭한 중극장 하나를 새롭게 만든 다는 마음가짐으로 공사에 임했다.
그러나 시설 공사가 어디 마음만으로 되는 일이겠는가. 사업담당자였던 서경아 주무 관은 본래 행정직 공무원으로, 공사 경험이 전혀 없고 시공 관련 지식도 전무한 상태 나 다름이 없었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사업을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일까? 서 경아 주무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발령 초기에는 건축용어 자체를 하나도 모르니까 기본적인 서류를 작성하거나 읽어 낼 수도 없었죠. ‘문외한인 내가 어떻게 사업을 진행할 수 있을까.’ 처음엔 정말 눈앞 이 캄캄했어요.”
난생처음 들어보는 공사 재료와 건축용어, 공연예술용어들이 서 주무관의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 ‘비계(인부가 통행하거나 재료 운반을 하기 위한 발판)’라면 돼지고기 비계밖에 모르던 서 주무관이었다. 부분 시공이 완료되었다고 해서 혼자 현장에 가면 설계도면을 앞에 두고도 눈뜬장님이 따로 없었다. 그러나 감독공무원들에게만 의지 하고 있을 서경아 주무관이 아니었다. 그는 각종 건축 관련, 공연예술 관련 전문서적 을 일일이 찾아 탐독하며 용어를 외우고 공부해 나갔다. 설계사와 감독공무원 등 이곳저곳에 의견을 자문하는 등 발로 뛰는 행정도 놓치지 않았다. 그렇게 되기까지 수 월한 일은 하나도 없었다. 하필 이번 기능보강사업에는 공사마다 계속 설계변경이 발 생하는 불상사가 따랐다. 설계변경 서류를 계약계에 보내면 거절당하기가 십상이었 다. 본청에 근무하다 보니 아는 건축직, 시설직 직원도 없어 소위 말하는 ‘안면 행정’이 란 것은 엄두도 내지를 못했다. “선배님, 좀 부탁드립니다”라는 한 마디로 해결할 수 도 있는 일에 서 주무관은 열 배, 스무 배 고군분투해야 했다. 그 무수한 노력을 주변 에서 지켜본 관계자들은 막상 설계변경이 생겼을 때 기꺼이 먼저 도움을 주었다. 서 주무관의 열정 어린 노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그 같은 노력은 시공현장에서도 마찬가지로 발휘되었다. 공사 초기에는 서 주무관이 현장에 주차하면 ‘아줌마’ 소리 를 들으며 경비원으로부터 박대를 받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6개월 이상 매일같이 내 집 드나들 듯 현장을 찾는 서 주무관을 본 경비원의 태도도 곧 바뀌었다. “힘드실 텐데 대신 주차해드리겠다”며 도움을 주게 된 것이다. 처음엔 무시하던 현장 인부들 도 매번 묻고 메모하며 공부하는 서 주무관의 모습에 마음을 열었다. 공사현장 은어 까지 알아가며 인부들과 소탈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도 하나의 소소한 재미였다. 이 렇게 대우가 달라져 공사가 끝날 때쯤엔 업체 감독관 말엔 콧방귀도 안 뀌는 현장 관 계자들도 서 주무관의 전화 한 통이면 현장 준비를 해놓고 기다릴 정도가 되었다. 서 경아 주무관과 함께 행정지원-현장지원 투톱을 맡아 공사를 진행했던 한국소리문 화의전당 장석봉 시설팀장 역시 주역으로 빠질 수 없다. 그는 서 주무관을 가리켜 “몰 라도 하나하나 물어가며 배우는 성실한 자세, 그리고 부지런함으로는 따라올 사람이 없다”고 평가한다. 모두가 우려했지만 개막 전에 사업을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었던 서 주무관의 강력한 무기는 바로 ‘성실함과 부지런함’이었던 것이다.
1년 6개월만에 기획부터 리모델링, 공연 개막, 문체부 우수여행상품 선정까지… 전남 지역 대표 브랜드 공연으로 자리 잡은 <뮤지컬 춘향>, 성과 창출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2014년 6월, 드디어 <뮤지컬 춘향>의 막이 올랐다. 전통음악과 춤, 소리가 어우러진 뮤지컬로 전주 한옥마을 관광객들이 인근에서 즐기기에 안성맞춤인 작품이라는 평 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글로벌 관광상품으로 기획된 덕분에 외국인 관객들은 한국 전통문화에 흠뻑 빠졌고 춘향의 지고지순한 사랑에 감동을 받았다. 매주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상연되며, 2014년에는 총 136회 공연이 진행되었다. 해당연도 총 관람객 이 20,232명이니 회차당 평균 149명의 관객이 든 셈이다. 2015년 7월 현재까지도 매 번 60% 이상의 객석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관람객을 대상으로 한 공연 만족도 조 사에서 5점 만점 중 4.16점이라는 높은 점수도 받았다. 브랜드 공연 상연으로 공연장 활용 횟수는 사업 이전과 비교해 14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 정도면 전북지역 대표 브 랜드 공연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북의 다른 명소와 연계한 글로벌 관광 패키지 상품도 개발되었다. 한옥마을-금산 사-<뮤지컬 춘향> 코스가 상품화되어 팔리고 있다. 한옥마을과 경기전, 남부시장 야 시장, 청년몰과 연계하는 상품이나 계절에 따라 코스가 변경되는 상품 역시 개발 중 이다. 2015년 7월에는 <뮤지컬 춘향>이 포함된 여행상품이 한국여행업협회(KATA) 가 주관하는 ‘2015~2016 우수여행상품’으로 선정됐다. 이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우수 여행상품 인증제로 전문 평가 위원회의 심사를 거치는 국내 최고 권위의 인증제도라 는 점에서 더욱 뜻깊다. 송하진 전북도지사가 말하는 도정 역점시책인 ‘휴수동행(携 手同行)’은 바로 이러한 협업에 방점을 찍는 말이다. 도서관문화시설팀과 관광과가 손잡고 이루어낸 ‘토탈관광’이 성과를 드러내고 있다.
기능보강사업은 시설 확충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지역 인재 발굴과 육성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배우와 연출진 등 62명의 전북지역 예술인을 채용하여 지역 고용창출에도 힘이 된다. 생계유지가 어려운 예술인들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터전이 마련된 것 이다. 상설공연은 매년 공모를 통해 테마와 콘텐츠를 바꿀 예정이다. 관객들에게도 지역 예술인들에게도 바람직한 방향이다.
예산 절감으로 시행하지 못해 아쉬웠던 엘리베이터 설치 건도 2016년에 공사를 시행 할 예정이다. 새로운 담당자 허재 주무관의 바람은 전북예술회관이 도민의 문화공 간으로 더욱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카페테리아 설치 등 관람객을 위한 편의시설 지원 사업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또한 2016년에는 전라북도의 우수한 자원을 바탕으로 전 문성과 창의성을 갖춘 민간 주도의 ‘전북문화관광재단’이 출범할 예정이다. 재단 운 영사무실이 전북예술회관에 자리 잡을 예정이라고 하니 예술회관이 ‘예향 전북’의 중 심이 되리라는 예상을 해본다. 예술회관은 한옥마을로 위시되는 전주 시내 관광권으 로부터 700m 떨어진 곳에 있다. 자연스럽게 관광객들이 기존의 관광 섹터 밖으로 활 동반경을 넓힐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한옥마을, 남부시장, 객사 등 기존 관광지뿐만 아니라 서쪽 주변 상권까지 지역 경제를 활성화되고 있다는 좋은 평가가 이어진다. 전주시민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던 흐릿한 기억. 오래전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 관통로 사거리에서부터 예술회관 계단까지 너도나도 기다랗게 줄을 섰던 기억 이다. 그 추억의 공간에서 새로운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이제 전라북도 문화예술의 새로운 막이 오를 시간이다.
한산하기 이를 데 없던 전주 남부시장에 2014년 야시 장이 문을 열면서 발 디딜 틈이 없어졌다. 대낮처럼 환 한 불빛 아래 문전성시를 이루는 가운데 다양한 먹거 리와 아기자기한 소품을 구경하려는 관광객들은 바쁘 기만 하다. 막걸리로 만든 아이스크림인 ‘아이술크림’, 외국 여행에서만 맛볼 수 있었던 이국적인 간식거리, 소박하지만 정겨운 손바느질 액세서리 등 볼거리와 먹 거리가 넘쳐난다. 이곳을 찾는 하루 평균 방문객은 어 느새 7천여 명이 넘어간다. 매출도 이전과 비교해 20% 이상 증가했다. 전형적인 십자형의 전통시장 골목이 지만 길게 늘어선 35개의 매대가 색다른 모습을 더해 준다. 매대의 운영자는 시니어클럽, 미취업 청년, 다문화 가족 등 다양한 계층으로 이제는 야시장 안에 어엿 한 공동체를 이루었다. 갈수록 쇠락해가는 전통시장 에 새로운 아이디어로 발전 방안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지역경제 활성화 전국 최우수사례’로 선정되기 도 했다. 그 성공 요인은 무엇일까? 야시장의 모든 매 대 운영자가 남부시장 기존 상인들과 1:1로 자매결연 을 하고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다문화가정과 청년 들에게도 창업의 기회를 제공한다. 야시장 개장을 반 대했던 기존 상인들도 이제는 오히려 확대 운영을 기 다릴 정도이다. 개장 이후 인근 한옥마을을 찾는 관광 객과 시민들에게 새로운 야간 문화콘텐츠로 주목받고 있는 남부시장 야시장. 앞으로는 체류형 관광객 확보 등 새로운 성과 창출에도 나설 예정이다.
첨부파일 |
|
---|
지자체장 소개 닫기
사업담당자 닫기
관련기사 닫기
지자체 홍보자료 닫기
관련사진 보기 닫기
로그인 닫기
댓글